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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쓴 대선의 기억 - 1987년

Free Speech | 2009. 6. 4. 15:01 | Posted by 김수민

그해 매일처럼 TV에 아저씨 넷이 나왔다.
그들 각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인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질렀다.
부모에게 물어 그것이 나라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행사임을 알았고, 거듭된 뉴스 시청을 통해 네 후보의 이름과 소속정당을 다 외웠다.

기호 1번은 인상이 후덕해 보였다. 반면 내 눈에 2번은 불손했고, 3번은 무서웠고, 4번은 칙칙했다. 
10년이 지나서야 찌푸린 3번의 표정이 방송의 편파왜곡보도의 결과임을 깨달았다.
또 기억에 남아 있는 건 후보들의 손동작이다. 노태우 후보는 브이자를 그렸고, 김영삼은 엄지와 검지를 붙여 0을
만들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펴서 본인이 03임을 만방에 과시했다.  

호감도의 순서는, 1번, 4번, 2번, 3번 순이었다. 
나는 그래서 1번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투표와 개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리 없는 아이였기에
나는 알아서 1번이 당선되는 줄 알았다. 뿐더러 나머지 순위도 기호 순대로 정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버이도 모두 1번을 지지했다.

2002년 대선을 지나 우리 집안에 아주 잠깐 과거사청산의 열풍이 불었다.
그해 숙부들은 노무현을 지지했고, 숙모들은 이회창을 지지했다.
막내 숙부와 숙모는 투표장에까지 가서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육탄전 직전이었다.
그들은 모두 경북 지역에서 자라났으나 남자들은 정치를 생각할 시간이 있었고 여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이를 '남자의 개혁성, 여자의 수구성'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쟤들은 부부가 따로 찍는데, 당신은 그때 날 왜 말렸느냐"며 아버지에게 따졌다.

사연인즉슨, 어머니는 1987년 선거에서 김대중을 찍으려고 했었다.
물론 어머니 역시 포항에서 자란 분이고 특별히 진보적일 리가 없었다.
그는 1986년 건대 시위 화면을 보며 "학생이 공부나 할 것이지"라고 한마디해 친척 오빠들의 호응을 받기도 했었다.어머니는 직장에 취업했을 때 거듭 질문을 받았다. 성적이 좋아서 굳이 이쪽으로 오려는 이유를 회사측에서 궁금히 여겼기 때문이다. 사측은 어머니의 고향집으로 사람을 보내기도 했다. '위장취업'을 의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위장취업이란 팔자 좋은 대학생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다만 그런 어머니도 뭔가 나라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중 가장 신선하다고 느껴진 김대중에게 마음이 갔었다. 어머니가 어렸을 적 동네의 김대중 포스터는 늘 훼손되고 낙서로 뒤덮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되레 역발상을 초래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버지는 강력하게 "김대중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어머니를 책망했고
별다른 논리를 가지지 않은 어머니는 수긍하고야 만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당시 세살배기에 불과한 내 동생만을 빼고 세 명이 모두 노태우를 지지했고 두 명이 그에 표를 보탰다.
어머니가 기호 2번에 투표하기까지는 15년이라는 세월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나의 의심은 빨리 찾아왔다.

국민학교 3학년 무렵, 중립적 관점의 역사만화만 봐도 박정희가 장기집권한 독재자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 이미 TV에 연일 중계되던 청문회를 통해 망신당하는 전두환을 목격했다.
나는 노태우는 좀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인상'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뉴스에서 "노대통령 사과해야"라는 헤드라인을 봤다.
아주 오랜 뒤에 돌아보니, 그 사건은 윤석양 이병의 안기부 사찰 폭로일 확률이 크다.
이승만만 나쁜 놈이 아니라 현 대통령도 잘못을 하고 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른들한테 속았을 수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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