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준 교수가 신해철 비판 2탄을 <프레시안>에 올렸다. 특이한 게 있다. 그가 진중권의 "연예인은 널럴하게 봐줘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발밑을 통째로 흔드는, 정희준 대 정희준의 투쟁이다. 그 둘이 서로 어퍼컷 맞고 어퍼컷 날리고, 아주, 신난다, 재미난다, 더 게임 오브 데스.
진영논리 자체가 현실을 은폐하고 개개인을 억압하는 폐해도 있지만, 이번 사안에서 어차피 진영논리는 설 자리는 더더욱 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누가 나더러 "지난 번에 올린 글에는 (대체로 또는 거의) 동의한다"고 밝힌다고 해서 그걸 덥썩 물 것은 아니다. 대충 쇼부치고 넘어가는 게 아니므로, 아무리 나에게 어떤 것을 동의하고 전반적으로는 의견이 겹친다고 씨부려봐야 내게는 그 어떤 소용도 없다. 남의 머릿속을 헤집고, 그러고 나서 요리조리 발을 빼고, 그러면서도 뱉고 싶은 건 다 뱉어버리고, 말이 말을 만들어 버리는 최악의 논변. 거기에 아무리 내 입지에 유리하더라도 '한 편'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다.
끝끝내 상대의 이면을 들여다 보려 하고 못 보면 지어내서라도 관찰일기를 써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은, 결국 제 자신이 상대로부터 뒤돌아선 채 마구잡이로 맞지도 않는 뒷차기를 날리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건, 다짜고짜 '빠큐'를 날린 신해철 당신도 마찬가지야.)
에드워드 베렌슨의 <카요 부인의 재판>. 프랑스 급진당 당수 조제프 카요가 <르 피가로>의 규탄 캠페인으로 궁지에 몰리자, 카요 부인이 그 신문의 편집장을 저격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 책은 사건사를 다루는 데 그치고 있지는 않다. 연애, 이혼, 결혼이나 당대의 여성관, 남성관, 페미니즘 그리고 정치적 배경과 전쟁 일보직전의 분위기 등이 이 사건을 통해서 해부되고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결투였다. 툭하면 벌어진 이 난장판에는 장 조레스도 두차례 가담한 바가 있단다. 카요 부인의 재판에 배석한 판사들도 결투문화의 잠재적 일원이었는데, 그 판사 중 하나의 이름-'다구리'에 나는 폭소했다).
신해철CF사건 역시 그 논란이 내보이고 있는 양상과 그것이 드러났던 다른 사례들을 돌아보고 숙고하게 하기도 한다. 그에 대한 여러 두둔이나 옹호, 지적과 비난들이 깔고 있는 한국사회의 사유와 통념이 그대로 드러났다. <카요 부인의 재판>과 그나마 비슷한 한국사의 아이템으로 '정인숙 사건'을 생각했는데, 조금 더 지난일들을 톺아보니, 황우석사건과 더불어 신해철사건도 꼽힐 만하다는 생각이다.
신해철이 일관된 교육관을 가진 게 아니라느니, 그러니까 논평할 가치도 없다느니, 해명 글에 나타난 교육관은 이번에 지어냈다느니, 따위의 질러댐과 둘러댐을 넘어서서, 현실 속에서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나 그의 생각을 이용해서 먹고 사는 구조는 실재하며 고로 이를 직시하고, 그것에 관해 발언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해철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여러 논자들이 스스로의 난점을 뾰록낸 것도 많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식이니 논객이니 지성인이니 해봐야 마지막에 남기는 그 부분, 그 앙금이야말로 알짜배기가 아닐까 한다. 진중권의 "연예인이니까 널럴하게 봐줘야"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당찮은 속내읽기와 혐의중심 독해를 일삼는 어느 댓글러에게 꺼지라는 거친 언사를 일삼았다. 왜 그랬을까. 나도 속내와 혐의를 읽어내는 독해, 그것에 바탕한 공세에 수년간 지쳐 있었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남기는 그 부분, 그 앙금이야말로 알짜배기가 아닐까 한다.
못났든 괜찮든 나는 내 진면에 가장 가까운 것을, 나의 지쳐 있음을 숨길 의사가 없다. 곤두선 신경을 감추지도 않을 것이다. 내 스스로 윤리적으로는 물론 사유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당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고, 그런 이상 나나 다른 사람이 피해자가 되지를 않기 바랐을 뿐이다. 상대가 콱 눌러 찌그러뜨리고 싶은 적일지라도 예단과 관심법은 삼가야 한다. 그 결과로 언제나 부메랑이 돌아오는 법이고, 마침내는 자신을 망가뜨리기에 이른다.
한때는 인간들이 논리적인체하는 가식을 뚫고 저지르고야 마는 오류들을 수집해봐야겠다는 충동이 들기도 했다. 조금만 틈을 내줘도 기어코 뻘타를 날리고야 만다면, 내 쪽에서 틈을 내줘서 들통나게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일종의 '함정수사'라는 결론에, 인간들이 항상 내포하고 있는 폭력을 책임감 없이 들추는 행위라는 반성에, 생각을 접었다. 물론, 이보다 더 큰 요인이 있었다. 고의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언제나 타인들은 내게, 또 그 거꾸로의 구도에서도, 인간들이 서로서로에게, 그래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기 이야기 없이 말을 위해 말을 지어내는 부류의 인간들이, 어떤 권력을 크게 쥐든 간에 최종적으로는 파산할 수밖에 없음을 믿고 있다. 이들로 세상이 아비규환이 된다면 가슴 아픈 일이겠으나, 그렇다고 그들을 특별히 겁내지는 않는다. 그 지경의 인간들이 많고 힘이 세다면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자신이다. 어떠한 일을 같이 하게 된 분들이 <비폭력적 대화>라는 주제로 강의도 듣고 책도 읽어보자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그 책을 읽고 곱씹었더니 아무 말도 할 수 없겠더라는 걱정이 든다"고 일러둔다. 나도 이런 근심에 자주 노출되어 있다. 이렇게 저렇게 다 따져가다 보면, 결국 나는,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다며 발언을 접었다는 사람의 사연을 들은 적도 있고, 나중엔 내가 그리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분(들)을 존중하고, 나아가서 존경하기도 한다. 그리고, 숱한 오류로 가득찬 인간사회와 그것이 쏟아내는 논리와 발언들이 자정능력을 잃었기에 그들이 입을 다물고 떠나갔다는 반성을 한다.
'Foru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윤대 나쁜놈 (5) | 2009.03.11 |
---|---|
연쇄살인사건 (2) | 2009.03.05 |
신해철 논란, 해명5부작에 초점 맞추죠 (13) | 2009.03.03 |
신해철, 멋없는 쇼지만 언행불일치 아니다 (진보신당 게시판) (20) | 2009.02.27 |
가라공화국 전복 2 (6) | 2009.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