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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단상

책이라곤 읽지 않는 | 2008. 6. 25. 22:06 | Posted by 김수민
1.
"어제, 간첩이 잡혔다. 너희도 이런 건 알아야 돼... 민중당의 김낙중이란 사람 등등이 간첩으로 잡혔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들은 이야기다. 담임 교사가 워낙 정색을 하고 말한 데다가 나는 그것을 뒤엎는 보도를 볼 수가 없었다. 과거 박정희 정권이 고문을 자행했음은 알고 있었지만, 간첩사건들이 조작되어 왔고 아직도 그러하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탐루(探淚). 눈물을 찾는다는 뜻이다. 김낙중 선생의 딸, 김선주 씨가 집필한 책이기도 하다. 김낙중은 청년시절 부닥친 전쟁 속에서 국군도 인민군도 거부하였고, 손수 쓴 통일방안을 들고 남북을 오가다 북에게는 '미제의 고용간첩'으로 남에게는 '북에서 1년간 교육받은 요원'으로 찍힌 비운의 인물이다. 이 사건은 파고 또 퍼내는 우물이 되어 그를 수차례 간첩으로 만들고, 굴비처럼 간첩단을 엮어내는 기원이 되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무르익지 않은 나라에서 발생한 좌우갈등에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그는 민족적 관점의 결핍으로부터 좌우분열의 원인을 찾았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자였고, 사회진보를 추구하지만 공산주의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민주사회주의자였으며, 남한과 북조선의 관제 통일방안이 아닌 중립화와 연방제통일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남과 북 사이의 중도파였다. 합법적 진보정당 건설과 보수야당(김대중)과의 연대를 동시에 추구했다는 점에서 좌우 사이의 중도정치인이기도 했다(나는 실제로 여권측이 민중당의 계좌로 돈을 넣었고, 김낙중 선생이 그런 현상을 괴로워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했다. 김낙중 선생은 김대중에게 민중당 후보를 일괄 사퇴시킬 터이니 서울 지역구 두개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물론 나는, 이것이 매우 현명한 거래라고는 보지 않는다).

김낙중을 기억하는 이는 문익환과 백기완을 기억하는 이보다 훨씬 적다. 두말할 나위 없이, 레드 컴플렉스 때문이다. 문익환은 다분히 친미적인 배경을 가진 목사이며, 백기완은 반공주의자인 김구와 장준하의 제자 또는 후배였다. 반면 김낙중에게는 딱히 방패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수병이나 김남주 같은 지하조직사건의 희생자들만큼 기려진 것도 아니다. 김낙중은 남루하고 축축한 회색지대에 서 있었다.


2.

인터넷뉴스로 한국전쟁 참전국의 국기들을 들고 있는 일군의 예비역 사내들을 보았다. 최근에 이름을 널리 알린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이다. 달력을 보니 오늘이 6월 25일이다.


3.

환경이라는 게 참 무섭다. 어리벙벙하게 뛰어다니다 휴식시간에 좋아하는 유행가 한소절씩을 부르던 훈련병들이 있었다. 그들은 1주일이 지나 습관적으로 군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해, 그들이 가장 좋아했던 군가는 <전선을 간다>였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맺힌 눈동자

밟아도 뿌리를 뻗는다며 옛날 옛적 조상들이 세운 큰나라를 찬양하는 <아리랑겨레>나 "고향땅 부모형제 평화를 위해"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걸라는 <멸공의 횃불>보다 우리는 이 노래를 더 좋아했다. 가슴이 찡해 남몰래 슬쩍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탐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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