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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의 기일 -그리고 정성희와 임용준

史의 찬미 | 2008. 7. 6. 07:24 | Posted by 김수민
매년 6월 9일 추모제를 열지만 이한열 열사의 기일은 7월 5일이다. 우연하게도 어제 그의 기일을 맞이하여 사상 두번째 규모의 촛불집회가 있었다. 추모제 일자는 6.10항쟁기념을 염두에 둔 일정이겠지만, 나는 앞으로 될 수 있으면 7월 5일로 무게를 옮겨 실었으면 좋겠다. 해마다 학교 도서관에 걸리는 피흘리는 그림도, 생전의 해맑던 고인의 모습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이한열 님 외에 연세대가 학교-전학생 차원에서 기리는 열사로 노수석 님이 있다. 그러나 연대에는 기려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열사가 두 분 더 계신다. 둘 다 녹화사업 와중에서 의문사를 당한 분들이다. 열사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어찌하여 추모제가 열리지 않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하 yolsa.org에서 퍼옴.

 
  정성희  
  (1961년~1982년)   당시 20세 학생열사
 
1962년 1월 출생
1981년 연세대 영독불계열 입학
1981년 11월 25일 시위관련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음
1982년 11월 28일 강제징집됨
1982년 1월 4일 자대배치, 이후 학원소요 관련자로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옴
1982년 7월 2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동지는 일차 문무대 훈련 당시 시위를 선동하고 노래를 선창하였다는 이유로 문교부 리스트에 기록된 뒤 연행되어 조사를 받다가 강제징집을 당했다. 그리고, ’82년 7월 2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하여 강제징집, 녹화사업으로 인한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동지의 사망소식을 듣고 달려간 가족들은 병참모부에서 빈소를 보게 됐다. 군 당국에서는 사고 현장이 민간인 통제구역이어서 현지답사는 불가능하다며, 가족들에게 부검포기서와 화장동의서, 사인에 대해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았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동지는 ’81년 흥사단아카데미와 학내에 유인물을 제작·배포하는 조직에 가입해 활동하다 11월 25일 학내시위에서 연행돼 동료 14명과 함께 강제로 입영됐다. 부대생활 중 지휘계통과 보안부대의 관찰, 면담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사망하기 전 입대동기가 사신관계로 보안사령부에 구속됐고, 학교 선배가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의 주범으로 오인되어 보안사령부에서 조사받는 과정에서 동지와 학교동료들을 언급, 경찰과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또한, 동료들에게 죽음을 예시했고, 전방실습생에게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과 장영자 사건에 대해 물었다. 군 동료들과 소대장, 중대장, 보안부대 병사 등은 휴가 전후 동지가 보안부대에 호출되어 갔다고 하나 보안부대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임용준  
  (1962년~1984년)   당시 22세 학생열사
 
1962년 4월 21일 출생
1981년 연세대 심리학과 입학
연세방송국 기자 활동
1981년 11월 교내시위 때 연행, 훈방
1984년 4월 18일 군 입대
1984년 11월 2일 오후 5시 45분경 소총으로 목부위 관통, 의문의 죽음을 당함
 
동지는 ’81년 연세대 심리학과에 입학하여 연세방송국의 취재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81년 11월 교내시위 때 서대문 경찰서에 연행되어 훈방된 후, 경찰의 특별 관리대상과 순화대상자로 선정되어 경찰에 의해 집중 관리되었다. 그리고 ’84년 4월 18일 가족과 기관원들의 종용에 의해 휴학원을 제출하고 군에 입대하였다. 그 후 11월 2일 오후 5시경 M16 소총에 의해 총탄 한 발이 목 부위에 관통하여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죽음 이후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동지가 경찰에 의해 집중 관리되었고, 기관원들의 종용에 의해 거의 강제 입영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군 입대 이후 동지가 체격이 왜소하고 체력이 떨어져 거의 매일 고참병들에 의해 상습적인 구타와 가혹행위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기무사의 자료 비협조 등으로 사건의 명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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