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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1년 대학에 들어와서 2002년부터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괜찮은 교육학도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학점이 너무 좋지 않았고 교육학에 관해 아는 것이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졸업한 다음에 전공을 살릴 일을 맡을 지도 불분명한데, 그러나 만일 교육학과 관련된 일을 한다면 그것은 교직일 것이다. 필자가 교사라면, 사학을 이중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한 역사 선생일 터이다.

교직과정 이수를 작심한 교육학도들은 3,4학년에 교생 실습을 나간다. 필자는 모교로 나가고 싶다. 졸업하면서 그렇게 속 시원할 수가 없었건만 10대의 마지막 세해를 바친 그곳을 데면데면하게 여길 수가 없었다. '학벌'이란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학연혐오론자인 것과는 별개로, 경북 구미에 있는 내 모교를 나온 학생을 우연히 만나면 반가울 것 같다. 실제로 필자는 한 인터넷 매체에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어떤 독자에게 동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반가운 감정이 일었었다. 모교는 남자학교다. 남학생들로만 가득찬 학급에서 여섯해씩이나 보낸 처지에서 조금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군데 가장 먼저 갈 곳이라면 그 학교를 택하겠다. 대신에, 틈틈이 제발 빠른 시일내에 그 학교가 이웃의 여고와 통합하기를 기도하겠다.

국사 교과서를 펼쳐 가장 먼저 읽는 단원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E.H.카의 물음에 부응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경험상 대개의 교사들은 이 단원을 하루도 안 되어 독파하기 일쑤였다. 역사 교육이 교과서의 주요 대목들을 암기하여 객관식이 다수인 시험문제를 맞히기 위한 것인 탓이다. 필자는 이 단원에서 최소한 1주일동안의 수업시간을 모두 할애할 것이다. 학생들의 푸념이 들려올 지도 모른다. 잘하면 학부모의 귀에 들어가 항의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물론 학생의 장래를 걱정하는 선생으로서, 서울대제일주의를 욕하는 일도 서울대 출신들의 몫임을 목격한 인생의 선배로서, 시험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다. 허나 학교가 그깟 시험점수를 올리는 곳인가. 그렇다면 학교는 문을 닫고 교사들은 학원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 역사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교과서나 문제지에 제시된 판에 박힌 답만을 남기고 빠르게 암기에 들어가는 태도에 맞서, 필자는 너 임자 만난 줄 알아라, 는 식으로 덤벼들 것이다. 입시에 쫓기는 학생들을 고려해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요약해 프린터로 돌리고, 첫 주의 수업에서 열띤 토론을 유도할 것이다. 필자는 토론을 벌일 때 처음에는 쭈볏쭈볏하던 학생들이 초반에 나온 발언을 곱씹다 어느새 진지한 논자로 변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필자는 수업의 처음, 중간, 종반에 잠시 끼어들어 유명 사학자, 철학자들의 사관 및 역사철학을 소개하면서 토론의 댐을 열 것이다.

필자는 사관에 못지 않게 현대사, 특히 한국현대사에 관한 부분을 교실에서 잘 듣지 못했다. 교육과정이 기말고사 이후로 밀려나 '시험에 안 나오는 나머지 부분'으로 치부되거나, 시험 직전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수업하여 '잘해야 한문제나 나오는 단원'으로 전락했었으니까 말이다. 요사이에는 대폭 보강되고 별도로 '한국근현대사'가 수능선택과목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근대 이전의 역사와 이후의 역사를 이어서 생각하여 전자가 후자에 끼친 영향과 후자를 통해 전자를 읽는 지혜를 헤아리는 기회가 더 필요하다. 필자는 교단에서 김춘추의 나당연합 외교과 오늘날의 한미동맹을 견줘볼 것이다. 조선시대 훈구파와 사림파, 중상파와 중농파를 대조하면서 함께 좌우혁보의 전선을 설명할 것이다. 저널리즘을 가까이 두고 수업할 것이다. 당대의 시사문제를 직시한 사람은 나중에 역사를 바로 기억하기 용이하다.

수행평가나 방학숙제에 도입할 것은 '유적 발굴'이다. 고고학적인 탐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규모가 적거나, 중요성이 낮게 취급되었거나, 역사유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은 곳을 찾아서 발굴하는 숙제다. 자기만 알거나 아예 사연을 지어내는 걸 막기 위해서 얼마나 대중들에게 가치있는지를 채점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발굴하지 않거나 못한 학생들에게는 독서 숙제를 내줄 것이다. 그리하여, 1학기나 여름방학에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등을 과제로 하여 역사관 논쟁을 벌일 것이다. 토론장소는 인터넷과 교실을 아우른다. 2학기나 겨울방학에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와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을 통해 유구하다고 인정된 것이 실은 머지 않은 과거에 인위적으로 생겨났음을 고찰하면서, 찬반 토론을 벌일 생각이다.

아무래도 필자는 제도권 학교에서는 배겨나기가 힘들 것 같다. 학교장, 동료 교사들, 학부모, 그리고 불만을 가진 학생들의 항의가 지속되면, 살아남을 수 있어도 사표를 던져 버리는 게 필자의 성격이다. 그러나 필자는 굳이 그런 사태를 그려보지 않는다. 애초에 교육철학과 수방식이 맞아 떨어지는 대안학교 쪽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박봉에 고생하는 것은 듣지 알아도 충분히 알 만하다. 돈이 문제라면 다른 일을 벗삼아 하여 생계를 꾸릴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지식인 하워드 진도 미국의 교사였다. 교사는 그저 그런 직업이라느니 그래도 요즘 불경기에 인기직종이라느니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는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 비판적 지성인이 월급받아먹는 곳이 대학 뿐만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다. 교실에 학생과 같이 갇힌 선생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교실을 우주로, 우주를 교실로 만드는 선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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