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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니던 도중 몇번 공개서한을 썼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일이 커진 적도 두 차례 있었다.
2001년 여름,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공방이 한창이던 시절에 발표한 글.


안녕하십니까, 저는 동아일보 독자인 대학교 1학년생입니다.

제가 객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정기구독하는 신문이 없기에, 신문은 인터넷으로 보거나 기숙사나 캠퍼스 내에 널린 신문을 읽고는 했습니다. 제가 즐겨보는 신문은 다른 신문들이었고 동아일보는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 내려와서는 아침마다 동아일보를 받아보고 있습니다.

저의 집은 94년부터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할 당시 동아일보 지국에서 사람이 나와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었던 것이 그 계기였습니다. 어렸던 저는 그때 신문지국이 이삿짐 센터까지 겸하고 있는 줄로 알았었지요.


자유언론의 전통 지켜라?

요즘 들어 동아일보를 펼칠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오고는 합니다. 그나마 정신 건강에는 좋아서 다행일 듯합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화가 벌컥벌컥 나고는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놀랐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나라 신문들이 이렇게 유머러스해졌는지 말입니다. 동아일보 사원들뿐 아니라 외부 필자까지도 농담 실력이 향상된 거 같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이것이 농담이라고 믿고 싶을 뿐입니다.

오늘 16일자, 전여옥 씨의 기고는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동아일보가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에서 조선, 중앙과 달리 활용할 수 있었던 카드는 70년대의 그 자랑스러운 경력이었습니다. '백지광고 사태'로 일컬어지는, 언론자유를 갈망하는 언론인들과 유신 정권의 대결은 당시 세상에 없었던 저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익히 들어 아는 바입니다.

신군부 등장 이후 납작 엎드려 있었던 '쪽 팔리는' 경력도 있었지만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보도나, 박종철 씨 치사사건 특종 등으로 그 전통은 조금씩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전통을 동아일보는 새삼스레 되살려, 작금의 사태는 70년대의 언론탄압과 유사하다는 소도 웃을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여옥 씨는 맞장구를 치며 80년대 초 신군부의 언론장악 사태를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그네는 또 몇몇 신문들이 현 상황에서 "납작 엎드렸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처럼 조중동 비대 언론의 공세 앞에서 "납작 엎드리지" 않은 몇몇 신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는 걸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70년대의 동아일보와 관련하여 주시해야 할 쪽은 현 동아일보가 아니라 동아투위 출신의 사람들입니다. 동아투위 출신 사람들, 그리고 한때 동아일보가 품고 있었던 김중배 현 MBC 사장이나 손석춘 한겨레 미디어 팀장, 전 논설위원이었던 경기대 김재홍 교수를 비롯한 분들은 현재 동아일보가 언론탄압이라 주장하는 언론개혁을 두고, 찬성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언론자유를 외치던 사람들을 쫓아낸 동아일보가 남의 업적을 도둑질하고 있음에 경악하고 또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아일보가 저지른 조세정의 침해와 신문시장 불공정 행위가 70년대 동아투위 기자들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언론자유입니까? 또 왜 지금 동아투위 분들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지지하고 있겠습니까? 동아일보는 정상인데 그들이 변절해서입니까?


언론탄압은 어디서 오는가

필력에 걸맞지 않은 신비의 지능지수를 가진 이문열 씨가 지면에 나섰습니다. 이제는 그가 쓴 소설 제목이 <삼국지>인지 <홍위병>인지 얼핏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에 이어 왕년에 재야운동권 출신이라던 김문수 의원은 "시민단체들이 최면에 걸려 있다"며 일갈했습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만 보고서는 도저히 시민단체들이 도대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인간들은 정신차려라라는 식의 공허한 외침만 들려올 뿐입니다. 조선, 중앙일보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신문은 각자의 논조와 입장이 있는 거지만 각계의 주장을 충분히 전달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언론의 권리만 목이 터져라 주장하는 터라 의무는 잊은 것입니까?

눈에 띄는 건 <野 "세무조사는 언론탄압">류의 헤드라인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예의상 빅3 언론이 한나라당의 기관지라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언론개혁을 외치는 시민단체들이 홍위병이라는 투의 주장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 빅3 언론은 계속해서 한나라당의 주장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언론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습니다. 홍위병에 더 가까운 쪽은 빅3언론이 아닙니까?

언론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는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 기사를 기억하십니까? 기껏 기자들이 현장에서 기사를 날라왔더니 그런 식으로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탄압이 이제사 오고 있다구요? 스스로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저는 동아일보를 볼 때마다 버마를 떠올립니다. 버마 민중들의 민주화 운동에 군부독재 정권은 극심한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지요. 국제 사회에서는 버마에 대해 경제적 제약을 비롯한 일련의 조치를 꾀하고 있습니다. 그럼 과연 버마 정부는 무어라고 항변할까요? 아마 "버마를 탄압하고 있다!"가 되지 않을까요? 기자들의 60%가 세무조사를 조세정의 확립이라고 보며 거의 대다수가 정간법 개정에 찬성하는 데도 불구하고 유력신문 3사의 의견은 왜 이 모양입니까.


법 질서 불신하는 엄살

언론사 세무조사는 정치적 의도가 강할까요? 물론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치계가 하는 일에서 정치적 의도를 빼면 시체지요. 당연한 일 아닙니까? 언론사 세무조사가 정권 재창출용일까요? 그럴 겁니다. 정권 재창출을 노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가나 정당이 아니라 시민운동일 것입니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김정일 답방대비용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현 정부가 노리고 있는 대북정책의 성과는 김정일의 답방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고 언론이 딴지를 걸어버릴 경우 실패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석연찮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언론사 세무조사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정치권 일각의 의도가 시대의 요청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 행위는 욕망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당대가 요구하는 바와 일치할수록 그만큼 정당성을 띠게 됩니다.

모든 선행은 아주 순수한 동기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선행으로서 자기를 만족시키려 하는 욕구, 양심을 회피하지 않음으로써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 하는 욕구,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얼마간의 대가를 누리고 싶어하는 욕구 등이 맞물린다는 것입니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정부가 마땅히 시행해야 할 기본적인 일이며 여기에 이익 욕구가 개입되었다고 해서 문제삼을 만한 게 아닙니다. 언론사 세무조사라는 제도가 현 정권이 급조한 것도 아니며 민주질서를 위반하는 위헌위법적 혹은 초헌초법적 행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부로서는 빅3언론의 이런저런 딴지걸기가 건설적 비판과 대안제시가 아니라 물어뜯기이며 빅3언론이 쥐고 있는 과도한 권력이 그 배경이라고 판단했을 법합니다. 그래서 아마 정부의 정책들이 여기저기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뒤늦게나마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많은 국민들이 언론개혁을 요구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탈법 행위는 그간 면제받아왔고 언론사는 성역으로 남았습니다. 조선조 말기 세도가처럼 되었다는 말입니다. 언론이 누리고 있는 과도한 권력이란 그 논조보다는 면제받아왔던 온갖 부정 행위를 뜻합니다.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논조는 시민의 비판을 받고, 언론계의 자율적인 조정 속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불법은 정부만이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세무조사가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이냐'입니다. 추징금이 과하게 매겨졌으며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법부로 달려 가십시오. 한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삼권분립을 지키고 있는 나라입니다. 언론탄압이요? 언론 재갈물리기요? 그것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가 잘 아실 겁니다. 날마다 지면을 통해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으면서 탄압받고 있다니 어안이 벙벙합니다.

한국은 절도범뿐 아니라 사형수의 인권도 존중하게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그깟 탈세 혐의 포착되었다고 겁 먹은 척하지 마시고 할 말은 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변명과 발뺌대신 과감한 시인과 진심어린 사과, 소속을 초월한 언론개혁 대의의 인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같이 세무조사를 받고도 건전언론으로 거듭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정말이지 한국의 법 질서를 불신하지 마십시오. 왜 한국의 민주주의를 믿지 못합니까. 비록 완성도는 떨어질지언정 정부의 일방통행으로 언론이 탄압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허풍과 함께, 그런 엄살과 법적합리적 권위에 대한 무시가 보는 눈을 지치게 만듭니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오늘자 신문을 통해서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김병관 명예회장의 부인인 안경희 씨의 별세 소식이었습니다.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며 명복을 빕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무조사가 언론의 목을 죄어온 결과 안경희 씨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주장이 만연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지난 91년 대학생들이 노태우 정권에 항거하여 자살을 택했던 잔인한 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방식에 대해서 안타까움과 불만과 회의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사회의 불온세력으로 몰아붙이는 태도에 대해서는 한치의 동감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시도를 증오합니다. 당시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조선일보에 실으며 죽은 학생들을 잔인하게 묻었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의 굿판은 죽은 당사자가 아니라 노태우 정권과 언론권력이 빚어낸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학생들을 죽음에 몰게 했고 그 죽음을 이용하여 한바탕 '굿판'을 벌인 것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날, 죽음의 굿판이 재현할 기미가 보이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오늘 7월 16일자 A30면에서 "일생 내조만 하며 살아온 전통적인 한국 여성이 권력과 시대상황이 빚은 거친 세파에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고 주변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의견에 대해서는 동감합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 거친 세파의 책임에는 동아일보 스스로의 몫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그에 불구하고 동아일보를 비롯한 빅3 언론은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질 태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의 굿판인 것입니다.

안경희 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현 정국에 이용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허풍과 엄살은 비판받을 대상이지만 죽음의 이용은 명백한 도의적인 문제입니다. 만일 동아일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죽음으로 모든 걸 무마하려 했다"고 떠든다면 동아일보측에서는 분노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무조사가 사람 죽였다"라는 말 역시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짓입니다.


부자유스러운 동아일보에게

저는 동아일보의 부자유스러움이 세무조사 정국이 아니라 그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부자유스러움 앞에서, 동아일보에게 가졌던 일말의 기대들을 하나씩 접어나가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신문을 두 개 보던 96년경, 정리해고(?)를 했습니다. 당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를 보고 있었는데, 저는 하나만 보자는 부모님에게 좀더 개혁적이고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진 동아일보를 택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문 앞에는 동아일보가 계속 배달되었고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99년이었던가요, 박정희 기념관 국고 보조를 반대하는 동아일보 사설을 읽고 뿌듯하고 다행스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동아일보가 주는 감동은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어느새 "이거 끊어버려야 하는데, 끊어버려야 하는데"를 연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나쁜 신문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언론이라고 생각치도 않았던 것입니다.

시민들에게는 자신에게 더 맞으면서도 또 합리적인 논조를 내세우는 신문을 볼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일보를 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가족들간에 합의가 되지 않아서 동아일보를 끊지 못하고 있지만 저는 이제 더 이상 애독자가 아닙니다. 동아일보에게 할 말에는 애정어린 제언이 아니라 분개와 항변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사회면이었던가요, 아주 조그만 기사로 "동아투위 기자들이 70년 광고탄압과 현 언론사 세무조사를 동일시하지 말라"는 항의 성명을 내었다는 소식을 담았습니다. 그 기사를 실으려 했던 분들에게는 칭찬을 보내고 싶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사실보도나마 해주는 분들께 앞으로도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의지와 신념을 잃지 않을 것을 당부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때의 자유언론, 동아일보의 양심회복을 촉구합니다. 세무조사를 역으로 이용한 언론탄압을 중단하고 부자유언론의 멍에를 벗기를 소망합니다.

독자 올림.

덧붙이는 글 | 수신인
동아일보 E-mail 주소 newsroom@donga.com
김학준 사장, 김용정 편집국장
이규민, 김충식, 송문홍, 송영언, 전진우, 황호덕, 민병욱 논설위원
윤영찬, 김정훈, 박성원, 선대인, 윤종구, 송인수, 김삼영, 문철, 이재호, 윤정훈 기자 (정치면을 참고하여 열 분을 기자 수신인으로 정했습니다)

출처 : 부자유언론 <동아일보>에 드리는 글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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