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

« 2024/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박노자의 계급관을 비판한다 (2006. 1. 20)

휴지통 | 2009. 2. 5. 02:23 | Posted by 김수민
<유뉴스> 기획위원 시절인 2006년 초 발표됐다. 박노자 교수를 비판한 내 유일한 글이었다. 지금 <우리교육>에 가 있는 김명희 <유뉴스> 상근 기자에게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냐?"고 당시에 물었었다. 그는 "아니. 너 답다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지난 번 나는 이 매체의 <일즉다 다즉일>이란 칼럼에서 민주노동당 김창현 전 사무총장의 부적절한 인식을 비판했다. '대중정당을 표방한 국민정당 노선'은 대중정당과 계급정당은 서로 대치되므로 택일해야 한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마찬가지로 '대중정당을 부정한 교조적 계급정당 노선'도 동일한 토대 위에서, 지난 역사로부터 이치를 구하지도 않고, 현실을 세밀히 분석하지도 않는, '초보적 계급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서민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초반부터 철저히 정파간의 싸움으로 점철된 민주노동당 선거를 맞이하여 '다함께'는 1월 14일자 기관지의 내용을 미리 인터넷으로 끌어 올려 박노자 교수가 김인식 정책위의장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공개했다. 그는 "한국의 영세업자들을 보면 대자본에게는 수탈을 당하는 입장이지만, 예컨대 자그마한 구멍가게에서 자기 가족들을 초과착취한다든가, 아르바이트생 중 최하층의 노동자를 부린다든가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은 중간적이다"라고 밝혔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한국사회 현실에 관한 박노자의 몰이해 탓에 고개를 저었다. 가내상업에서, 동원한 이들은 기업인이라기보다 중간층 이하 노동자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영세자영업자들에 가깝고, 동원된 이들은 노동자가 아닌 대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알바생 착취'도 프렌차이즈업계에서 극명히 드러나는 현상이지 '붕어빵 장사'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박노자는 이어서 말한다 : "지금 한국은 임금노동자가 전체 인구 중에서 65~70 퍼센트 된다. 이 각계 각층의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해서 당을 꾸려간다 해도 이미 시민 대다수의 이해관계를 표방한다고 볼 수 있는데 굳이 그 성격을 훼손시킨다는 것은 극히 올바르지 못한 판단이다." 그러나 임금노동자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가혹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더라도) "착취자이기도 하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남성 노동자는 여성을, 어른 노동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짓누르고 있다.

계급은 지배-억압관계의 거대하고 유력한 현실을 설명하는 하나의 잣대다. 잣대는 단선적이라서, 성, 민족, 종교, 연령 등의 다른 잣대들과 어울려야 비로소 세계를 해석할 수 있으며 실천의 지렛대로 쓰인다. 노동계급을 대변한다는 것은 곧 여성과 성적 소수자를, 제국주의에 핍박받는 민족들을, 박해에 노출된 이교도들을,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노동계급과 함께 구석에 몰린 농민, 자영업자, 빈민들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자영업자의 양면성은 분석되어야 하나 그들을 내칠 이유는 없다. 만일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삼아 그 입장을 우선시하고 그것만으로도 다수를 대변한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면, 박노자는 자신이 그토록 비판해왔던 민족주의, 구체적으로는 '선민의식'과 '다수결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세계의 진보를 이루는 힘은 노동계급의 전진이 아니라 개개인의 고뇌 어린 결단에서 나온다. 피라미드 질서에서 아랫사람을 부리고 윗사람을 동경할 것인가, 아랫사람의 모습에서 윗사람에게 당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것인가. 이를 도외시하는 지식인은 파시즘과 속류 사회주의의 기로에 선, 민중의 이익을 핑계로 제 이익을 기도하는 야심가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정당은 사회 구성원들이 고립과 구속과 차별 대신 연대와 자유와 평등을 선택할 여건을 떠받치는 존재여야 한다. 진보정당은 마이너리티의 '정체성들'을 대변함으로써 '계급정당'의 의의를 살리며, 자신들이 끌어안아 중심에 세울 계급을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대중정당'의 구실을 해야 한다.

김창현이 진보적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고 '국민'을 중심에 세우려 고집했다면, 박노자는 '노동계급중심'이라는 늪에 발목이 잡혀 복잡한 구도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이번 민주노동당 선거는 진보진영이 이런 초보적 패러다임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고 또 발전했는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