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응하시겠다구요? 차, 옆으로 대시죠." 부대에서 강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탓에 난 물렁한 고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옆에 있던 3개월 후임 대원은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을 감추는 기색이다(나보다 오래 부대에 있었던 그는 진압훈련에는 능한 반면 치안보조업무에는 서툴렀다. 부대 복귀 전까지 끝내 검문에서 한건도 올리지 못했다). 차가 갓길로 가는 동안 나는 후임을 지나치며 보란 듯 중얼거렸다. "씹새끼... 한번 해보자 이거지?" 톨게이트에서 근무할 때 일어난 일이다.
순찰지구대 근무할 적에도 검문소나 순찰 지역 내 거점에서 곧잘 검문검색을 했었다. 검문검색의 목표는 무면허 운전자를 적발하고 기소중지자를 검거하는 것이다. 실제로 무면허운전자와 기소중지자는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성과도 짭짤했다. A수배, B수배, C통보, 이렇게 등급별 건수를 따져 보너스가 지급되기도 했으니.
검문검색은 음주단속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생각보다는 순순히 응하는 시민들이 많지만 논에 나는 피처럼 이따금 짜증을 내거나 반항하는 이들도 많았다. 차를 댄 그는 면허증이 없다면서 버텼고, 처음부터 그랬듯 연신 반말을 찍찍 내뱉었다. 나는 주민등록번호를 불러 달라고 했다. 주민등록번호를 무전으로 쳐 실내 근무 중인 대원이 검색을 하면 운전자 이름, 면허 여부, 지문번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문번호는 아홉가지로 분류되는데, 세가지로 나눌 줄만 알아도 검사하기에 지장이 없다. 손가락은 열개나 되니까.
"어이, 뉴스에 보니까 서울에는 지문만 대면 다 나오는 기계 나왔던데?"
"여기는 강원도구요. 주민번호 불러주십시오. 지문 대조해보겠습니다."
"안한다면?"
부근 파출소로 넘기겠다는 말에 그는 멈칫하고, 동석한 친구가 심통 그만부리고 응하자고 한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야 그는 주민등록번호를 불었다. "경찰법 3조와 전투경찰대법 200조에 의거하여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근거 법조항까지 붙이는 내 앞에서 그가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근거 법조항은 경찰관이 검문을 할 수 있는 받침대일 뿐, 시민이 반드시 검문에 응해야 하는 강제성을 띤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은 나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생사람 잡는 일상적 검문검색은 없어져야 한다. 더구나 검문검색의 스트레스는 검문소, 톨게이트, 파출소 등에서 근무하는 전의경들이 대부분을 짊어지고 있다. 대원들을 그만 부려 먹어라. 시민들을 그만 성가시게 해라.
사람, 차량을 상대로 수배 및 도난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휴대용 조회기.
HDT라고 부른다. Hand Data Terminal. 군생활 내내 나와 함께하였다.
가죽장갑을 끼고도 나는 후임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저 기계를 다루었다.
밤에 슉 지나가는 차량의 번호판까지 포착하여 조회할 때면 경찰직원들조차 놀라곤 했다.
그것은 나의 얼마 안 되는 특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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