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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복과 조끼

Forum | 2009. 7. 4. 21:16 | Posted by 김수민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지만 문민 지도자다. 그점에서 김일성과 가장 다르다. 김정일이 군복 입은 모습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그는 인민복을 택했다. 이 또한 정장 차림이었던 제 아버지와 다른 부분이다. 중산복이라고도 하는 인민복은 노동계급 친화성을 상징한다. 김정일의 인민복 착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체제의 안정과 결속을 기도했다는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인민복이 대외적으로는 악효과를 낳았다고 추측한다. 바뀌지 않는 춘하추동복은 그의 파마 머리와 키높이 구두, 선글라스와 어우러지며, 게베라, 카스트로, 후세인과도 비하기 힘든 엽기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와서 정장이나 캐쥬얼 또는 군복을 입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렇게 해봐야 카스트로의 면도에 필적하는 충격만을 낳을 것이다. 대내적인 위상도 실추될 것이다. (영도자의 위엄을 너무 높고 굳게 잡아두어 나중에 고칠 수 없는 것이 쿠바나 북조선의 약점이다. 장기집권에 대한 설명-"서구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볼 일 아니다"라는 것 역시 되레 그 체제의 뒤떨어짐을 토로할 뿐이다.)

위는 비정규직법 회담에 참석한 노동운동 대표들의 조끼를 보고 이어진 생각이다. 수십년간 화면에 비친 김정일의 인민복은 더이상 노동계급의 유니폼이 아니고 이제는 노멘클라투라의 상징이다. 지금 조끼는 어떠한 의미인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와 노동운동가의 거리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거리보다 훨씬 멀고, '조끼'는 아직 그것을 입어보지 못한 다른 노동자들에게 남의 패션일 뿐이다. 물론 투쟁하는 운동가의 심벌은 노동자가 정치인이나 자본가와 테이블에서 맞겨루기하는 중이라는 걸 한눈에 내보이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같은 계급에게나 다른 계급에게나 고정된 이미지로 다가간 결과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조끼가 촌스러우니 벗으란 이야기가 아니다. 벗는 게 더 유의미해질만치 너무 입었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많다. 그리고 다양하다. 얼핏 사측이라는 오해를 받더라도 노동운동가가 정장을 입고 나올 수도 있고, 치마든 청바지든 면바지든 반바지든 얼마든 입고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노동자와 약자의 생존권을 위해 싸우고 대화하는 운동가들에게, 미사일로 동해에 물수제비를 뜨는 나라의 지도자를 들먹여서 죄송하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불안정노동을 겨눈 사회적 담론이 확산되길 빈다. 그러면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조끼입고 팔뚝흔드는 일쯤으로 취급받을 가능성도 점차 녹을 것이다. 다원주의 또는 종다양성은 여유 내지는 사치가 아니라 훌륭한 생존의 방식이다. 앞으로 노동운동의 생명력은 이 이치에서 나올 것이다. 나는 세대교체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 아직은 현장 운동가들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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