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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속지

Listen to the 무직 | 2008. 10. 20. 23:34 | Posted by 김수민

어느 초슈퍼밴드의 새로운 걸작을 샀다. 속지에 적힌 비평인지 소개문인지를 보니 가슴이 막혀 온다. 10년이 지나도록 개선된 것이 없다.

우선 매니아와 음악평론가 사이의 차별점이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를 깔아놓고 있다. 이는 민주화나 포스트모던이 벽을 허문 귀결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습성의 발로이다. 더 말할 나위 없이 모든 음악평론가는 음악매니아여야 하나, 매니아라고 해서 음악평론을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음악을 많이 듣는 것과 음악에 대해 쓰는 것, 뮤지션의 테크닉과 장비, 계보를 읊어대는 것과 그것을 글로 푸는 것 사이에는 건너뛸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매니아적으로가 아니라 사회학적, 철학적, 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에조차, 글쓰기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대중음악평론이 수두룩하다.

이번에 읽은 속지에서, 글쓴이는 곡별 소개를 하지 않았다면서 그 이유를 주절주절 설명하고 있다. 곡별 소개는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글쓴이의 자유이다. 그 자유는 프라이드로부터 나오며, 글솜씨의 보좌를 받는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곡별 소개가 삽입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 뿐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쓸데 없이 횡설수설하더니 어떤 대목에서는 자신이 느낀 아쉬움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음반 속지의 최대 맹점, '주제 파악의 실패'가 드러난다. 음반 속지의 글은 소위 발문이라고 불리우는 부류의 글에 해당하며, 더 노골적으로는 '주례사(적 비평)'의 성격을 품는다. 달리 말해, 비판은 저널리즘이나 출판에서 소화할 일이라는 것이다. 찬탄만을 지나치게 늘어놓아 글과 글쓴이 자신의 격을 함께 깎아내리는 것이 우려된다면, 절제해서 쓰면 된다. 그간의 소식과 음반제작 과정, 뮤지션의 옛 궤적, 신작의 장르적 특성과 주법, 창법 따위만 건조하게 늘어놓아도 훌륭한 발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음반 속지를 물들일 펜은 평론가나 기자보다는 음반사 관계자가 직접 쥐는 게 더 올바르지 않을까 싶다. 평론가의 권위를 대신해 카피라이터의 특질도 녹여낸다는 의의도 있다. 설마 음반사 직원들이 죄다 비지니스나 영어에만 능하거나, 음악애호가지만 글 한 편 깔끔하게 쓸 수 없는 사람들이겠는가.

발매 이전에 음원이 공개되는 경우라면 팬클럽 회원에게 맡기거나 네티즌들에게 공모를 해도 될 것 같다. 1980년대, 한 애호가는 '부활'의 음반에다, 두고 두고 웃음거리가 된 '라우드니스를 능가한다'류의 문구를 휘갈긴 바 있다('부활'은 훌륭한 밴드지만, 음악적으로 너무 다른 '일본 밴드'를 끌어 들이는 짓은 치기 어린 쇼비니즘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위험쯤은 음반사가 충분히 걸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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