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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DJ

Listen to the 무직 | 2007. 10. 30. 22:15 | Posted by 김수민

깨어있는 나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타락하는 전파로부터 날 지켜줘

모든 불빛 꺼져도 모두 잠이 들어도
갈등하며 힘겨운 내 곁에 있어줘

영원히 잠든 세상에서 날 일으켜 줘

듣고 싶진 않아도 선택할 순 없쟎아
깨어 있는 새벽이 다를 수 있도록

보고 싶지 않아도 선택할 순 없쟎아
타락하는 전파로부터 날 지켜줘

영원히 잠든 세상에서 날 일으켜 줘

어두움 속에서 외로움에 묻힐때
나를 감싸 안았던 나의 DJ

어두움 속에서 주저 앉고 싶을 때
손을 잡아 주었던 나의 DJ

날 지켜줘 날 지켜줘
깨어줘 날
잠이 들지 않도록

모든 불빛 꺼져도 모두 잠이 들어도
갈등하며 힘겨운 내곁에 있어줘
영원히 잠든 세상에서 날 일으켜 줘
- 블랙홀, <새벽의 DJ>, <<CITY LIFE STORY>>, 1996.



내가 중학생일 적에는 블랙홀이 <1대4의 갈등> 같은 노래에서 호남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혹시 ‘새벽의 DJ’가 ‘슨상님’을 가리키는가 싶기도 했는데, 그 DJ는 실은 전 아무개라는 새벽녘 ‘어둠 속’의 라디오 진행자이다. 그는 근래 학력위조파문의 한 주인공이 되었고 얼마 전 라디오 프로그램을 그만두었다.

“신해철이 원래 서울대 갈 실력인데 내 프로그램을 듣다 서강대를 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이땅의 록 키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나는 그의 방송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고 그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다만 내가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가 아트록을 국내에 소개하는 선구자였다는 평가였다. 물론 그가 방송에서 아트록 선곡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그러나 그를 아트록의 소개자로 평하기에는 그의 선곡세계는 광범위했다.

성시완이야말로 아트록을 소개했다는 측면에서 아무도 그의 오른편에 붙일 수 없는 독보적인 DJ였을 것이다. 나는 성시완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다만 근래 그가 털어놓은 글로 보아 그가 전 아무개씨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것은 물론, 전 아무개씨에게 여러 피해를 입었음이 드러났다. 상세한 사항까지 진실을 가려내기는 힘들겠지만 그 정도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그가 추가로 언급한 전씨의 평소 행적은 학력위조가 한번의 큰 거짓말 뿐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일찍 자는 체질은 아니지만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라디오를 청취하지는 않았던 나한테 전씨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평론가로서 내게 끼친 그의 영향도, 조성진이나 성우진, 박준흠 등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그래서 작금의 사태에 실망할 것이 없다. 다만 내가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근 들어 ‘수호천사’까지 자부하고 나선 그의 팬들 중 일부가 말하는 “배철수가 대단한지 아는데··· 전XX이야말로”라는 레퍼토리를 향한 대답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가요가 아닌 팝을 소개하는 얼마되지 않는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점 이외에는 별로 특성화되지 않은 프로그램임은 분명하다. ‘정통FM'치고 멘트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친숙해져도 우상화되지는 않는 인물이 아닐까. 배칠수는 항공대 밴드를 하던 청년 시절 몇 달동안이나 씻지 않고 히피로 살았다. 하지만 그가 히피 원조격으로 떠받들여지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어 마음가짐이 변하긴 했겠지만 볼썽사나웠던 적은 없었다. 음악보다 방송이 더 잘 맞다며 음악캠프에 생을 바치는 그가, 어눌하고 낮은 목소리를 역으로 카리스마의 자원으로 삼았던 어떤 DJ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교대상이 DJ답지 않은 진행을 하면서도 DJ로서 허명을 떨치며(마돈나가 아닌 ‘머다나’를 소개하는 등의 발음으로도 유명한) 매니아들의 욕을 먹는 김기덕이라면 몰라도.

물론 그와 함께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한 분들을 마음아프게 할 의사는 없다. 어둠 속에서 주저 앉지 않고 전씨의 손을 잡고 일어난 사람들에게, 새벽의 DJ는 제 사명을 다하고 사라져간 은인이다. 단, 거기서, 멈춰야 한다. “그가 학력위조로 얻은 게 있는 건 아니다”라는 변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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