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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에 해당되는 글 1

  1. 2008.08.12 미스코리아가 누드모델보다 그렇게나 잘났어?
 

안티-미스코리아 대회가 처음 열릴 때 언론보도로나마 접하며 느낀 청량감이 떠오른다. 나는 안티-미스코리아 대회의 지지자인 셈이고, 또 미스코리아 대회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러나 미스코리아 대회를 폐지하자는 사람은 아니다. 어떤 것에 반감을 가지는 것과 그것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비판자들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외모지상주의를 북돋우는 주요 동력은 미스코리아 대회의 수상자나 주최측보다는 그 대회에 쏠리고 몰리는 시선과 환대에서 훨씬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니 이 대회를 TV에서 몰아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으며, 굳이 없애려고 노력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미모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연예인들이 날개짓을 하면 온 사회가 S라인과 V라인의 태풍에 뒤덮인다. '원더걸스'의 소희나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이 받는 각광은 미의 다원화와 개성의 분출을 증명하는 한편으로, 외모지상주의가 더 넓은 폭을 가지며 공고해지게끔 교묘히 작동되기도 한다(통통한 볼이나 쌍꺼풀 없는 눈을 가진 이들도 얼굴이 작고 날씬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외모지상주의를 우려한다고 해도, 빼어난 외모를 향한 추앙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반대자들도 미모를 향한 추앙 자체가 아니라, 그를 기준으로 세워지는 서열을 비판한다. 하지만 서열의 생성을 봉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며 외모도 그 예외는 아니다. 미모를 근거로 진, 선, 미를 가리는 일이 그르다면, 성적을 토대로 등급을 매기는 일도 그르다. 지식인이 미인보다 더 윤리적이라거나 지식이 미보다 사회에 더 효용이 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지식이 노력의 결과인 반면 미는 그저 얻어진 상속물’이라는 설명도 발 디딜 곳이 없다. 그러므로 유권자가 더 나은 정치인에 투표하여 그를 당선시키고 소비자가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고르듯, 미인을 선발할 수도 있고 나아가 직종에 따라서 또는 심사자의 필요에 의해 미모가 합격이나 돈벌이의 견인차가 될 수도 있다. 미모를 향한 추앙이 존재하는 한, 그에 발맞추는 쪽도 늘 생기기 마련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갖가지 서열과 순위라기보다는 그것으로써 우성 인간과 열성 인간을 가리는 차별이다. 이것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어떤 분야의 승자도 다른 영역의 패자가 되면서 멸시받을 수 있다. 예컨대  공부를 잘하지만 얼굴이 못생겼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특히 그가 여성이라면 ‘연애 시장’은 물론이고 ‘취업 시장’에서도 불이익의 여지가 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도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예쁘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몇몇 연예인들도 곧잘 “멍청하다”, “머리가 비었다”는 공세에 시달린다. 어쩌면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친다는 묘사는 한국사회에 그리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외모는 시쳇말로 ‘스펙’이라고 부르는 ‘출세와 생존의 조건’에 철저히 예속된 하나의 부속품에 다름 아니다.

스코리아 대회의 모토도 실상 “예쁜 게 최고야!”와는 꽤 거리가 있다. 마치 기여입학제를 도입한다는 사립대학이 기부금 말고도 고교 내신성적이나 학생집안의 사회기여도까지 잰다면서 둘러대는 것처럼, 미스코리아 대회도 지성과 교양까지를 아울러 수상자를 뽑는다는 걸 뽐낸다. 주최측인 한국일보사는 미스코리아를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 환경을 지키며 어린이를 보살피는 한국의 대표사절”이라고 정의한다. 그렇지만 이 대회가 참가자의 평화운동, 환경운동, 보육활동 경력을 따져, 입상과 순위에 반영하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질문은 매끄러운 언변을 테스트하고 그의 아름다움이 최소한 백치미는 아님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친다. 

그렇다면 무엇이 준거가 될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대회의 수상자들, 특히 최고 수상자들 중에는 서울 지역의 유명 대학교를 다니는 여학생들이 흔하고, 서울예선의 수상자가 전국본선의 수상자로 굳어지는 경향도 강하다. 세상의 흐름상 그들의 가정환경 또한 부유할 확률이 높다. 대회가 은밀히 귀띔하는, 그러나 아주 실질적인 모토는 대충 이런 게 아닐까: ‘재색 겸비한 최고의 스펙녀를 가장 좋은 혼처로’? 또는 ‘얼굴도 예쁘고 지능도 빼어난 연예인 탄생’?(물론 ‘연기력’이나 ‘가창력’은 보장할 수 없다.)

이번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벌어진 사건은 위선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최측은 과거 누드모델이었다는 이유로 한 수상자의 자격을 박탈하였다. 그의 누드화보가 세계평화를 깨트리거나 환경을 파괴한 것도 아니고, 화보를 보지도 못할 어린이에게 해로울 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더욱이 주최측은 ‘성의 상품화’를 들먹이며 자격박탈을 합리화할 처지도 못 된다.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똑같은 색깔의, 그것도 예전보다 더 얇아졌다는 의혹을 받는 수영복을 입혀 무대에 세우지 않았는가. 차라리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대회에 프로의 참여는 반칙이다”라고 변명한다면 몰라도.

주최측인 한국일보사는 제 인터넷판부터 돌아보길 바란다. 초기 화면에 뜨는 연예계 가쉽이나 남자들의 눈을 잡아끄는 사진은, 나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과시한 교양(!)주의와 대조적이다. 이 선정성은 특정한 섹션에 그치지 않고, 어느 객원논설위원의 에세이까지 집적거리기도 했다. 이를테면, <꽃값-사랑, 사랑의 꽃이로구나!>라는 글이 <길거리 그녀들이 몸 팔고 받는 ‘화대’의 진짜 의미>라는 타이틀과 연결되어 있고, <구강성교에 쓰이는 건 혀뿐이 아니었다>는 링크를 클릭하면 <잇바디-눈 속의 매화>라는, 기대 이하(?)의 글이 나온다.

그 에세이들은 진중한 인문적 성찰을 담고 있는 동시에 교묘하고 수줍게 에로틱한 측면이 있었고, 그래서 그 ‘야한 포장’은 그럭저럭 애교로 넘겨줄 만한 ‘낚시’였다고 백보 양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대담함에 비해 누드모델을 거르는 태도는 군색하고 초라하다. 게다가 주최측이 이미 누드화보 촬영 사실을 인지했다는 박탈자의 증언이 진실이라면, 그들이야말로 심사의 자격을 박탈당해야 한다.

철학적 심미성은커녕 야트막한 통속적인 아름다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새삼스럽고 촌스러운 결정. 이 대회로부터 ‘미의 대제전’이라는 수식도 박탈해야 할 것 같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최대 안티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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