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도 '특강'이 있었다. 1998년 가을 내가 재학하던 고등학교의 강당에 1학년 학생들이 모였다. 특강의 주제는 잊혀졌지만 강사의 소속이 '자유총연맹'이었다는 것은 기억에 남아 있다. 자유총연맹은 한국의 대표적 관변단체이나 그러면서도 당시 상황상 '김대중 정부 하의' 관변단체라는 성격을 피할 수 없었고, 예의 그 '안보'와 '통일'이라는 특강의 기조에는 김 정부의 기조였던 '햇볕'이 슬그머니 들어와 있었다. 시종 애매했던 강연은 막판에 갑자기 박정희 문제로 새기 시작했다. "한가지만 인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번 봅시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 왜 하필이면 쿠데타도 납치도 고문조작, 사법살인도 아닌 '장기집권'을 거론했을까. "그럼,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했는 걸 부인하는 사람?" 나는 혼자서라도 손을 들려고 했으나, 아뿔싸, 강당 학생들의 대다수가 '전사'해 있었다. 끝나가는 강연을 연장해 원성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때나 요즘이나 학생들은 효과적인 보이콧 방법을 알고 있다. 민망하게도 카메라 부근에 앉은 학생들이 모조리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중 몇몇은 아예 담요까지 덮고 앞자리에서 대담하게 존다. 잠에서 깨어 해맑은 얼굴로 강연장을 나갔다는 학생들은, 뻔한 줄거리였다는 반응과 강의의 주장이 틀렸다는 비판,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불만 등을 표출한다. 시중 유행하는 '한국근현대사 특강'의 풍경이다.
특강의 연사로 초빙된 인물 면면이 드러나면서부터 이 기획은 시민들에게 맹성토 당했다. 한눈에 봐도 극우편향이었다. 이것을 의식해서인지 당국은 이영훈과 조갑제를 제외했다. 이 둘은 평소 언사를 감안하면 수면제가 아니라 폭탄이 될 법도 하니, 학생들의 집중도만큼은 제고할 수 있는 카드일 수도 있었다. 앞으로 어떤 폭탄이 추가될지, 어떤 수면제가 사라질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절대로 빼서는 안될, 반드시 학생들 앞에서 전시해야 할 사람이 있다.
1992년 9월로 예정된 남북고위급회담을 맞아 노태우 정부는 이산가족상봉을, 북한 정부는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옹의 송환을 꾀하고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이에 이산가족 상봉, 판문점 면회소 설치, 납북 선원 송환의 세가지 조건을 일단 내걸며, 세번째 조건(현재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을 뺀 나머지 두 조건이 합의될 시 이인모 옹을 송환하기로 작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9월 15일 북한은 첫번째, 두번째 조건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평양에 있던 남한대표단은 협상을 타결하겠다며 청와대, 통일원, 안기부로 청훈을 보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답신이 돌아왔다. 3개 조건의 동시 충족으로 협상방향을 바꿔 버린 것이다.
대통령의 훈령이었으니 이산가족 상봉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온 임동원 당시 고위급회담 교류협력분과 위원장은 통일원장관에게 질책을 받았다. 반드시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하라고 재차 훈령을 보냈는데도 성과가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평양의 대표단이 받은 훈령 내용은 3개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아마 '중년탐정 김정일'이라면 "움직이지마! 움직이는 놈은 다 범인이여~"를 외쳤을 터이다. 결국 서울과 평양을 오간 전문이 조사되었고, 범인이 드러났다.
범인은 평양에서 보낸 청훈을 안기부 이외의 수신자들에게 전달하지 않았고, 평양에서 가짜 훈령을 작성했으며, 진짜 훈령을 입수하고 나서는 회담 종료 이후 총리에게 지연보고했다. 간덩이 스케일 한번 거하게 과시한 그는 안기부의 특보였고,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산가족 상봉의 의의나 이인모 옹의 송환 명분 등은 차치하기로 하자. 이 사건의 본질은 간첩도 아니고 불복종 시민운동가도 아닌 정보기관 간부가 청훈을 묵살하고 훈령을 조작했다는 데에 있다. 혹시 이 글을 접한 독자 가운데 한국근현대사 특강 따위를 들었거나 혹은 들어야 할 고등학생이 있는가? 엄청나게 간 큰 그 남자는 바로 여러분의 특강에 나타날 수도 있다. 이 아저씨가 강단에 섰을 때, 여러분이 졸면서 헤드뱅을 할지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생각에 잠이 확 달아날지, 나는 짐작하지 못한다. 다만 그 이름 석자 '이동복'을 꼭 기억해두길 바란다. 아울러 특강을 기획한 교육당국에도 고한다. 이동복 씨의 출연 빈도를 늘려라. 그는 특강의 취지인 '묵살'과 '조작'에 더없이 적임이니까.
추신: 내가 강원도 모 순찰지구대에서 일할 적이다. 경찰 유관기관에서 직책을 맡은 지역유지인가 뭔가가 쇼파에 앉아 지구대장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강연은 잘 들으셨나요?" "아, 뭐~ 우리 같은 사람이 들을 필요가 없어요. 노무현 정권부터 와서 듣고 정신차리라고 해요." 강연은 경우회인가 뭔가가 주최했고, 연사는 이동복이었다. 그놈의 입은 '잃어버린 10년'동안에도 멈추는 법이 없었으며, 언제나 그랬듯 꼰대 어른들은 자야 할 때 잘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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