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간 습작을 쓰지 못했다. 내 전경대 경험을 다룬 <독사의 낙원>이라는 작품을 구상했지만, 단편을 쓰기 전에는 장편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스스로 지키다 이 모양이 됐다. 떠오르는 족족 소재가 장편감이라, 단편 못 쓰는 놈이 장편쓴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기나 하면서. 거의 6개월에 하나꼴로 소재를 만들었고, 이번 여름부터는 작품으로 착실하게 옮겨야겠다.
하나는 허경영과의 인터뷰 그리고 '아는 형이 아는 선배'의 사연을 버무릴 작정이다(아차, '아는 형'에게 허락을 받는다(기보다는 상의를 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허경영에서 딴 인물의 이름은 '황건영'으로 처리되는데, 눈치가 빠르다면 어디서 유래된 이름인지 알 것 같다. 또다른 하나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경험담은 안 들어간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95%는 구라가 될 전망이다. 아마 두번째 스토리가 먼저 나올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희곡을 쓰려고 한다. 하워드 진이 쓴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를 리메이크할 예정이다. 원작으로 공연을 했다가는 마르크스 역할을 맡은 배우의 머리가 터질 수도 있다. 모노드라마기 때문이다. 이걸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 여러 배우가 등장하게끔 바꿀 생각이다. 예전부터 문화혁명에 관한, 웃기는 짬뽕 같은 연극도 하나 구상하고 있는데, 이건 아마 머리가 반백쯤 되어서나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습작을 쓰다 보면 꼭 스쳐 지나가는 이름들이 있다. 조세희, 고종석, 박민규다. 조세희를 떠올린다는 것은 거의 망상에 가깝다. <난쏘공>의 문체는 공원에 잠시 앉아 검열자들을 겁내며 쓰지 않고는 나오기 힘들다. 고종석은 사람들의 예상보다 소설을 잘 쓴다. 나는 그의 에세이보다 소설을 더 즐겁게 읽는다. 김병익이 평한대로 고종석의 작품이 '사소설'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데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결국 사변보다는 서사가 더 돋보이는 게 고종석의 소설이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그를 보고 있자면 흥미롭다 못해 귀엽기까지 하다. 박민규 소설은 punk다. 그를 읽은 사람들 상당수는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 소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내가 느낀 박민규는 조금 다르다. 그의 펑크는 섹스 피스톨즈나 레이먼즈의 펑크와는 다르다. 시골 할아버지들이 통기타로 띵가띵가 치는 델타 블루스를 어깨 너머로 배운 다음에 그 취향으로 바로 도시에 상경한 채 급하게 일렉트릭 기타를 잡았다고나 할까?
그 셋의 이름은 어떤 의지도 욕망도 없이 그저 눈앞에 기웃거린다. 요즘 들어 가끔씩 조두진이나 백가흠이 떠오를락 말락... 나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고, 참고하거나 훔칠 만한 작품도 없다. 다 쓰고 나도 어디 공개할 곳도 없고... 탈고와 동시에 축문처럼 태워버릴까나?
2003년 10월에 썼던 습작은 눈에 띄지 않는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 파출소 옆 문방구에서 산 노트에 육필로 써내려갔다. 10대 시절과의 화해를 목적으로 썼지만, 나중엔 내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에 학교에서의 활극을 시눕소스로 쓴 적도 있었다. 앞으로도 나의 10대, 달리 말해 1990년대는 마르지 않는 먹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1990년대'를 소재로 한 연작소설도 기획하는 중이다. 그 첫번째는 '최불암 시리즈'의 배후를 밝히는 놀라운 음모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