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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1.24 언제나 어디서나?
  3. 2010.01.20 '패션 좌파', 좌파의 확인 자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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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0.01.11 이 사람
  6. 2010.01.10 이제야
  7. 2010.01.08 군정 30년?
  8. 2010.01.08 괜히 먹였어.. 1
  9. 2010.01.06 현실은 시궁창
  10. 2010.01.05 대한민국의 학부모라는 사람들
  11. 2010.01.05 올해 소망
  12. 2010.01.04 편이 생긴다는 것 1
 

한일전을 넘어

2010. 1. 2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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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어디서나?

Free Speech | 2010. 1. 24. 18:58 | Posted by 김수민
오늘의 영국 문단은, 적어도 그중에 지식층은 잡초만 무성하게 자랄 수 있는 유해한 정글이나 마찬가지다. 문단의 신사가 되어 품위를 유지하려면 확실히 '인기' 있는 작가(이를테면 탐정소설 작가)가 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난 척하는 잡지에 발을 들여놓고서 지식층에 속하기 위해서는 온몸을 다 바쳐 막후 조종과 은밀한 아부 작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문단 지식층의 세계에서 '성공'이란 게 가능해서 '성공'이란 걸 한다면, 문학적인 재능보다는 칵테일파티의 주역이 되는 것과 벌레 끓는 새끼사자들의 엉덩이를 핥아주는 것이 더 큰 역할을 한다. 

-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220-221쪽.

요즘 설쳐대는 이들과 똑 닮은 꼬라지다. 그러나 이는 또한 언제나 반복될 현상이다. 남은 것은 오웰과 같은 시선을 가진 이들이 '좌시할 것이냐 그러지 않을 것이냐'다. 지금껏 나는 그냥 내팽겨쳐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날파리들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면서 외양간을 세우려 했다. 얻을 게 없으니 무시하고 치울 일이 아니다. 잃을 게 없으니 더욱 단호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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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좌파', 좌파의 확인 자살

Free Speech | 2010. 1. 20. 18:35 | Posted by 김수민

88만원세대론은 파산을 맞이했다. 아직까지 장사를 벌이려는 이들이 널렸지만 서울 지역 대학 출신 중산층들이 세대라는 이름으로 대변할 수 있는 바는 크지 않다. 88만원세대론을 정립하거나 지원한 이들 중 일부는 '계급적 접근'에 무게를 싣기는 했지만, 이쪽이든 저편이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는 단연 '읍소'가 꼽힌다. 우선, 실업과 경기 침체로 인해 보수화되고 정치적 대안이 없어서 탈정치화되었을 뿐이라며 곧 죽어라 변호를 해댄다. '20대가 다 똑같은 건 아니다'라는 명백한 진실 대신 '20대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외친다. "사람들을 세대로 한데 묶어 재단하지 말고, 나 역시 '20대'라는 틀로 보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는 찾기 힘들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블로그와 출판계는 '20대'라는 타이틀로 좌판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진보신당의 몇몇 학생들이 "비례대표 국회의원 상위 순번을 달라"며 찌질거린 사건도 있었다. 이들이 보내는 메시지의 핵심은 이거다. "옛날에는 20대들이 잘 나갔다. 딴 거 없다. 우리도 20대니까 힘을 좀 달라." 세대론의 그물코를 빠져나가지도 않거니와 새로운 세대의 논리를 쓰지도 않는다. 이들은 문필가의 경우에는 '이진경 워너비', 정치지망생의 경우에는 '김영삼 워너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성향은 이진경보다는 진중권이라고, 김영삼은 당연히 싫은 신좌파라고 밝히겠지만 말이다.

'패션 좌파'는 이렇듯 악화일로를 걸어온 88만원세대론이 죽어가는 사형수처럼 흘린 정액이다. 그것의 표층은 '폼 나게 입자'이고 핵심은 '남들이 따라하고 싶게 만들자'이다. 원작자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허지웅에게 기존의 좌파는 따라하고 싶지 않은 좌파였던 모양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그런데 연유는 꽤 다른 것 같다. 내게는 남을 따라할 이유가 없었다. 나 자신 하나를 비추고 돌아보는 일만으로도 버겁고 바빴으니까. 그러나 다른 많은 분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여기저기서 허지웅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얼마 전 한 대학생이 "안녕, 폼 나게 입자구" 투의 글귀로 독자들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런 글에는 늘 이런 댓글이 달린다. "글쓴이도 별로 간지 안 나는데요?" 남들이 선사한 별칭이 아닌 신문사측에서 스스로 붙인 '대기자'라는 직함이 그렇듯, 남들이 멋있다고 칭찬하기 전에 제가 먼저 설치는 꼴이 우스꽝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허지웅이란 이는 그의 글에 당혹감을 표했다고 한다. 자신의 패션 좌파론을 그의 패션 좌파론과 분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5.17은 5.16의 동생이 아니"라는 김종필의 변명을 방불케 한다. 허지웅 그부터가 "따라하고 싶게 하자"고 뇌까렸다. 혹시 자신과 똑같이 따라하지 못해서 불만인가? 그걸 바란 쪽이 멍청이일 뿐더러 보기에 따라서는 '그놈이나 요놈이나 거의 비슷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 패션이나 요 패션이나 딛고 선 전제와 현실은 같다. 1980년대처럼 학생운동 참여자가 많은 시절에는 임종석이나 김민석 같은 얼짱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1990년대부터는 전체 참여자의 수와 함께 얼짱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운동권의 인적 3요소 중 나머지 두가지, 브레인과 몸빵만 가득 남아 있다.[각주:1] 사람에게는 돈과 시간은 물론이고 열정도 다분히 제한되어 있다. 몸빵이 남의 주목을 받을 만큼, 브레인이 공부할 시간 아껴 코디한, 그런 패션과 간지를 갖추기는 어렵다. 그러나 패션 좌파 주창자들은 '운동권'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새로운 조류인 줄 알았지만, 그들 역시 속물주의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네 소비자요, 동시에 우등생 근성을 버리지 못한 '국영수 좌파'일 따름이다.

그들은 대중을, 그중에서도 제 또래 젊은이, 특히 제 성적 대상이 되는 성별을 꼬일 수 없는 패인을 '못생김'에 돌린다. 제 또래 전체를 빙자해 '88만원세대'의 주창자 노릇을 한 이들의 신상을 감안하면 무리도 아니다. 최근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번역 출간됐다. 당시의 영국에도 한국의 NL, PD 같은 교조주의자는 물론, 계급 차별을 반대한다면서도 자신의 계층계급적 특질에 쩔어있는 좌파들이 숱했나 보다. 조지 오웰은 "부르조아로 자란 유럽인은 자칭 공산주의자일지라도 몹시 애쓰지 않는 한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길 수 없는 진짜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어떤 호감도 혐오감도 '몸'으로 느끼는 것만큼 근본적일 수는 없다. 인종적 혐오, 종교적 적개심, 교육이나 기질이나 지성의 차이, 심지어 도덕률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인 반감은 극복 불능이다."

오웰이 신체적인 반감의 예로 든 것은 주로 냄새였다. 냄새가 아니라 얼굴이라서인가. 얼굴로 극복 가능을 보여준 사건은 흔하다. 2002년 대선 TV찬조연설에 나선 일명 '자갈치 아지메'는 이렇게 읊었다. "아구야, 니 닮은 노무현이가 대통령이 될라꼬 한다." 요즘에는 또 유해진 씨 덕분에 연예가에 훈훈한 이목이 쏠린다. 동네 가게에 앉은 '노간지'의 옷은 패션 좌파들이 소화 불가능한 옷이다. 유해진이 <공공의 적>에서 제 캐릭터를 한껏 드러내기 위해 붉은 장미 수놓은 새하얀 옷을 입었을 때,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대세와 표준으로서의 멋을 따르지 않은 그들은 열정과 진지함, 탈권위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반면 남이 자기를 따라하게 만들고 싶게 만들겠다는 이는 좌파라고 보기도 어렵고, 따라쟁이들로는 세상이 꿈틀거리지도 않는다.

계몽도 전위도 아닌 방식으로, 저마다의 내면 속에서 몰염치와 동거 중인 정의감을 건드려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멋으로부터 출발한다. 당연히 어떤 이는 패션으로 승부할 수 있고 그 태도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대놓고 '나는 간지난다'고, '너도 간지내라'고 지껄일 때 판은 박살이 난다. 타인이 질투해서가 아니다. 그건 전혀 간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멋이란, 일단은 남들에게 멋을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은근함이다(첫걸음이지만 너무 어렵긴 하다). 거기서 조금 더 멋있으려거든, 분명히 내가 누군가의 미감이나 정의감을 자극했는데 행동에 들어간 그 사람이 나를 스승이나 원조로 여기지 않게, 나아가서 잊어버리게 만들면 된다. 한마디 더 보태자면, 겉은 까불어도 속은 기품 있는, 속이 썪어도 겉이 의연한 그런 태도가 참으로 멋있다. 물론 멋에 대한 관점은 각기 다 다를 테고 나는 그 차이가 어지간하면 역겹지 않다.

그러나, '패션 좌파', 이것은 너무나 멋이 없다. 유사 연예인으로 자가포장해 정치사회적 신장을 도모한다는 이들이 자기 세대, 자기 부근의 잘나신 대학생 말고, 과연 절대빈곤에 내몰린 노년, 세계최강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청소년에게 얼마나 진득하게 '어필'할 수 있을까? 내 고향의 공업단지 근처 신흥 시가지에는 엄청나게 옷빨나고 어여쁜 여성 노동자들이 많다. 패션 좌파들이 그 곁에 가봤자 정치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이왕이면, 당신 같은 사람보다는 연예인이 낫겠지." 피력하는 강령에 어울리지 않게 뺀질하기만 한 '리무진 진보주의자'들은 우파 민중주의의 반란을 초래한다. 이 반란의 가담자들은 좌파가 (적어도 입으로나마) 모시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해서 빼앗긴 에너지는 파시즘의 원료로 쓰인다. 자칭 패션 좌파들은 이 경로 위에서 무대책이다. '리무진 없는 리무진 진보주의자들'은 앞날을 기약할 물질적 요건도 찾지 못할 것이다. 좌파 및 진보 진영이 하도 지리멸렬이라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온다지만, 이쯤 되면 확인 자살이다.

자신의 일상이든 기행의 공간이든 사건의 현장이든, 남을 따라하거나 남이 따라하게 하지 말고 제가끔의 위건 부두를 찾기를 바란다. 한국에 절실한 건 토니 블레어가 아니라 조지 오웰이다.

  1. 학생운동의 삼원구도를 요약한 '브레인-얼짱-몸빵'론의 원저작자는 김성원 씨라는 분임을 밝혀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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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지지자를 만났다

Free Speech | 2010. 1. 18. 01:07 | Posted by 김수민

나의 단골 술집은 일행을 구분해서 따로 앉히지 않는다. 특히 금요일, 토요일 밤에는 손님이 꽉 들어차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의 옆에 앉을 때가 많다. 술에 취하면 남의 안주를 덥썩 집어먹기 일쑤다. 나도 다른 이들의 맥주 피처를 건드렸다. 그랬더니 옆에 앉은 외국인들이 파안대소했다. 그렇게 그들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짧은 영어 실력 탓에 고향과 이름 정도를 물어보고 음악이나 같이 들을 줄 알았더니 일이 커졌다. 나보다는 영어를 확실히 잘하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 친구가 '밥 돌'이라는 이름을 꺼내면서 예상에 없던 정치 이야기가 꽤나 길게 전개됐다. 아니, 중간에 잠깐 곧 내한할 밴드 '킬러스'를 입에 올린 것 외에는 죄다 정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초등학교 영어 교사라는 M모와 R모 가운데 하나의 고향이 '캔자스'였다. 그러자 친구가 "고향이 캔자스면, 밥 돌을 압니까?"라고 물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밥 돌을 밥에 든 돌마냥 우지끈 씹어댔다. "하지만 우리 고향 어른들은 밥 돌을 좋아해." 영남 출신인 나는 다소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은 곧바로 오바마로 화제를 돌렸다. 내가 "하워드 딘 아냐?"고 묻자, R은 손을 가슴께에 올리며 '딘'하더니,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오바마'라고 외쳤다. "딘도 좋지만 그래도 오바마가 짱이야."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리버럴한 백인 청년인 그들에게 있어 긍지였고 애국이었다.

그들은 가차 없었다. 한나라당을 개무시하는 네티즌들처럼 공화당이라면 다 씹었다. 파월과 매케인도 씹혔다. 또 당연하게도, MB까는 사람들처럼 부시를 깠다. 이번엔 내가 손짓으로 비교했다. 손을 테이블께에 대고 "매케인"이라고 주지시킨다음 바닥으로 확 내렸다. "이게 부시!" 그러자 그들이 아주 정확한 비교라며 환호했다. 그들은 부시가 이라크전쟁으로 미국 망신을 다 시켰다며 한탄했다. 나는 "오바마의 아프간 파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뻔했지만, 혹시나 분위기가 깨질까봐 일단 말을 아꼈다. 실수는 중간에 친구가 했다. 순간적으로 "니거"라는 단어를 꺼낸 것이었다. 그 순간에 나는 리스닝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기색을 살피건대 친구가 '니거' 아니면 '호모'라는 '정치적으로 그른' 단어를 꺼냈으리라 짐작하고, "아 그건 그냥 말실수"라고 변호했다. 그들은 "블랙"이나 "아프로-아메리칸"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우리가 자주 글줄로 익혀왔던 예의를 설명했고, 우리는 "아 그야 알고 있었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R은 화제를 중국으로 돌렸다. 뭐 한마디로 "미친 공산당 놈들"이라는 게 요지다. 친구가 "전체주의지"라고 맞장구치자 R은 제대로 말했다며 동의하더니 빨간 옷을 입은 M을 가리키며 "너는 중국!"이라며 놀린다. 나는 "중국은 공산당도 아니다"라고 말했고, 우리는 그들에게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들이 명확하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그들은 해박한 지식보다는 간명한 구도 정리와 확고한 신념, '무엇이 미국의 명예에 부합하느냐'는 주제 의식에 충실했다. 그러니까 그리 학구적이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나는 "장 조레스 아나?"라고 물었다. 그들이 모른다고 답변하자 이번엔 "빌리 브란트 아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여자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아이 그건 메르켈이고... 동독과 서독을 통일한 사람이 있어. 그럼 혹시 프랑스의 미테랑은 아는가?"라고 또 물었다. "사르코지는 알아." "오, 사르코지. 프랑스의 부시!" R은 '그 정도 수준인가?'라고 갸우뚱했다. 열정적인 R과 달리 수줍은 M은 씨익 웃으며 "맞다, 맞아"라고 동의했다. 나는 "한국 대통령 이명박 알지? 걔는 한국의 부시"라고 첨언했다. 그들은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리얼리?"

"사회민주주의자"라는 소개를 못 알아들어 "중도 좌파"라고 다시 내 성향을 설명해줬다. 혹시 이것이 오해를 유발한 것일까? 미국에서 '레프트'는 민주당인데 거기다 '센트럴'이 붙을 경우 소위 '레이건 민주당원'에 가깝다고 해독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 생각이 든 건 그들이 레이건에 대해서 물어온 다음이었다. 나는 단호히 "오바마와 루즈벨트가 같은 범주면, 레이건은 부시랑 똑같은 놈"이라고 일러뒀다. 나 또한 그들이 혹시 '레이건 민주당원'인가 싶어서 도발의 가능성을 감내한 것이었다. 내가 히어링이 잘 안 돼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그들, 특히 R이 중국과 쿠바를 논하며 '프리 마켓'을 강조하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anyway 그들은 확고한 리버럴인 듯했다. "레이거노믹스가 미국을 망쳤다"는 데 동의하면서 "잘 사는 사람은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못살게 만들었다"고 했다. 한미FTA에 대해서도 같은 의견이었다. 한미FTA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들이 먼저 물어왔다.

어쨌든 '사회민주주의자'나 '중도 좌파'라는 개념어로는 설명이 힘들 것 같아 인물론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우리는 레이거노믹스를 졸라 싫어해. 당신, 크루그먼이나 스티클리츠 알아?" R은 모른다고 했는데 M은 "크루그먼은 잘 안다"고 답했다(약간 라틴의 피가 섞인 듯한 R은 스포츠팬을 연상케 하는 열혈 (애국?) 청년이었고, 새하얀 얼굴에 검은테 안경을 걸친 M은 그보다 신중하면서 조금 더 지적인 인상을 주었다). "데니스 쿠치니치 알아?" 그들은 안다고 답하더니 테이블 위에 종이를 두 조각으로 찢어서 놓고는 가까이 붙이면서 말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지금 거의 이렇게 비슷해. 그런데 쿠치니치는 아주 뚜렷하게 공화당과 차이가 나지." 

나중에는 그들이 우리에게 지지 정당을 물었다. "뉴 프로그레시브 파티를 지지하지." 당명을 듣는 순간 그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기사 그 이름은 너무나도 무난하다. 술김이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노회찬, 심상정의 이름을 그들에게 들려줬던 것 같기도 하다. 노무현 이야기도 했던가? 가물가물하다. "오바마가 노무현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아프간 파병은 잘못된 것이다"는 조언을 들려주려고 했는데, 내 영어실력은 생각을 못따라갔고, R과 M은 조금 먼저 자리를 떴다. 우리의 작별 인사는 "퍼킹 부시!"였다. 중간에 킬러스의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이 흘러나오자 그들은 환호했었는데, 내가 그들을 위해 신청했노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4년전쯤에, 한 대학 동기의 선배의 친구인 미국인 학생 둘을 만나서 밤새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한국어를 매우 잘했다. 또 그들은 정치학도였다. 그러나 정치의 'ㅈ'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제육덮밥'이란 게 매우 인상깊었다. 내 경험으로는 외국에서 온 한국 유학생들은 소박한 한식을 좋아한다. R과 M에게는 무슨 한식을 좋아하냐고 묻지 못했다. 'Favorite'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지만 그 뒤에는 'politician'이나 'band'가 붙었을 뿐. 내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 다른 이야기를 하고, 그가 돌아오면 곧바로 정치 이야기가 나와서 그리 되어 버렸다. 음악과 술이 주제인 장소에서, 어쩌면 주말 저녁 여자와 만나 대화하는 게 소망이었을지도 모를 그들이 기꺼이 열변을 토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정치에 목말라 하는 청년의 자화상을 보았다. 허나 만일 또 보게 되면 다음에는 딴 이야기도 좀 하자잉... 근데 내가 스피킹이 안 된다. 인명이나 개념어로 소화가 되는 주제였으니 망정이지 다른 화제로는 (음악이 아닌 경우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건배나 하며 찌그러져 있어야 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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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의 찬미 | 2010. 1. 11. 16:22 | Posted by 김수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대답하기가 난처하다. 대의명분 있는 뚜렷한 계기가 있어 딱 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다면 멋도 있고 질문 한 사람도 만족시킬 텐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단히 개인적인 이유로 민주화운동에 나서게 됐으니 말이다.

이처럼 민주화운동이나 정치활동에 참여한 동기가 사회적인 데 있기보다 개인적인 데 있었기 때문인지 나의 경험이나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내가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말하자면 '만물의 척도는 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회풍조에 편승하거나 사회과학지식에 얽매이지 않은 편이다.


교수들은 우리들의 주장이 다 맞는다면서도 '자네들도 어른이 되면 우리들 심정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다짐했다. 나는 어른이 되어도 젊은 사람들에게 '자네들도 어른이 되어 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멋진 이야기고, 오늘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장기표다.

늘 반성하며 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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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Free Speech | 2010. 1. 10. 01:45 | Posted by 김수민

폭설 내리는 날 온 세상이 머리속이 하얘져 치우고 쓸고

긁고 삽질하고 언길 조금 녹혀도

나무에 내려앉은 눈까지 털어내지는 못했는데

정신 없이 달리다 제동이 걸린 사람들은

바람에 날려 나무에서 떨어지는 눈꽃에도 놀라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오늘, 불붙는 순간에도 나무를 지키던

그대들을, 철이 돌아와 다시 길이 얼어붙을 때까지

바람에 날려 나무에서 떨어지던 

여러분을 이제야

고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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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 30년?

史의 찬미 | 2010. 1. 8. 20:48 | Posted by 김수민
'군사정부(정권)'의 정확한 정의를 모르겠다. 인터넷 사전을 뒤지니 대충 '군인들이 다스리는 정부(정권)'쯤으로만 나와 있다. 한국에서는 '군정 30년'이라고들 했다. 군인이 정권을 탈취하긴 했으나 30년동안 군부가 다스린 것은 아니다. 쿠데타 이후에는 민정으로 이양했고 자신이 그 문민이 되기 위해서라도 군복을 벗었으며 정당을 건설해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도, 노태우 정권까지 포함해, 30년이란다. 오래전부터 생각한 건데 정녕 '군정 30년'이라는 표현이 맞기는 맞나? 하기야 '군사 파쇼'라는 표현까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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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먹였어..

2010. 1. 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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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시궁창

Free Speech | 2010. 1. 6. 13:32 | Posted by 김수민

그저께 문을 열어 세상을 확인한 후 "다 멈춰 버려라~"하고 마음 속으로 소리 질렀다. 김규항은 이렇게 썼다.  

세상이 ‘본의 아니게’ 느려졌다.
레밍떼처럼 달려가는 사람들을 잡아 세우려고
어디로 달려가는 건지 한 번이라도 되새겨보게 하려고
눈이 이렇게 많이 오셨구나.

그러나 브레이크 걸렸다고 차가 멈추지는 않는다. 가긴 가야 하는 사람들이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눈을 치우는 문제로 서울 명동에서는 이웃간의 주먹다짐이 있었다. 폭설이 반가웠거나 그 의미를 되새긴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고들도 있었다. 족히 수십명의 어르신들이 빙판에서 다쳤다. 제길슨. 현실은 시궁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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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학부모라는 사람들

Free Speech | 2010. 1. 5. 18:50 | Posted by 김수민
중학교 졸업 직전 학교에서 졸업여행을 떠났다. 강당에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교장이 연단에 올랐다. "마, 친구 사귀는 건 급한 게 아입니다. 친구는 대학 가면 다 사귈 수 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세요." 그의 퇴장에 이어 예정에 없던 마이크를 잡은 캠프측 관계자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교장 선생님 말은 틀린 거야. 지금 곁에 있는 친구들을 소중히 생각해야 돼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사귈 수 없어."

그 교장의 지론에 동의할 사람은 얼마 없을 게다. 하지만 그건 불쑥 솟아나온 말씀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맡고 있다는 사람들, 특히 학부모들 대다수가 가진 가치관을 극도로 뚜렷하게 표출했을 뿐이다. 대한민국 학부모는 우월한 자리에 오르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우월하다고 해서 우월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그때는 우월감 가지는 법을 가르친다. "저기 저 불쌍한 애들을 봐. 넌 얼마나 행복하니." "그런 걸 못한다고 신경쓸 필요 없어. 공부 잘하면 돼." "애들이 따돌린다고? 야 커서 잘되면 걔들은 다 패배자야." "여자(남자)친구? 외모? 대학만 가봐. 다 풀려." 그나마 마지막 선동이 있어서 다행이다. 거짓말임이 확실히 들통나기 때문이다.

대인관계는 당사자가 맺는 것이고, 공부는 학생이 하는 것이다. 연애도 취직도 결혼도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걸 대한민국 학부모 대다수는 승인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부모와 자녀가 남남이라는 현실을 짓밟아버린다. 구조적 요인은 있다. 자신의 성장환경과 자녀의 성장환경이 현격히 다르다. 자녀의 오늘과 자신의 옛적을 쉽게 등치시키거나, 세상이 달라졌으니 몸소 겪으며 깨달은 것조차 내동댕이친다. 내 세대의 부모들이 그렇다. 쉽게 말해 쥐뿔도 모르는 사람들이란 얘기다. 허나 그런다고 참작이 되는 건 아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어른이 애한테 배우는 거"라는 교훈은 언제나 있어 왔다.

해결은 자녀가 할 수밖에 없다. 남들이 부러워하기는커녕 제 자신도 몇가지 스펙으로 허장성세 떠는 일 외에는 죄다 군색해진 상황은 결코 부모가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리고 좀 더 자아실현을 할 거면 자신이 그런 학부모는 되지 말아야 한다. 자신 없으면 가만 있고, 쭐리면 디지시라. 그럼 최소한 자녀가 찐따가 되지는 않을 터.

벌써 여러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그럼 우리(내) 부모들이 잘못가르쳤다는 말인가?"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말해줘야 한다. 그게 아니면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말인가? 그리고 잘못은 누가 했다는 말인가? 모든 게 다 이명박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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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망

Free Speech | 2010. 1. 5. 18:07 | Posted by 김수민
뭐 하나 건덕지 나오면 파블로프의 개마냥 짖어대면서 트집 잡고 베베 틀어놓는
것까지는 지 마음인데
그게 비판정신이니 예리한 지성이니 착각하는 사람은
안 봤으면 좋겠다.

만약에 보이면 한번 더 꼬아서 골치아프게 해줄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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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이 생긴다는 것

Free Speech | 2010. 1. 4. 17:33 | Posted by 김수민
2001년에는 대전 충남에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 봄날 자기네끼리는 곧잘 만나기도 했나 본데, 난리가 한번 났다. S와 통화를 했더니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K랑 L이랑 같이 살잖아. 근데 L이 연애하고나서부터 애가 너무 달라져가지고, 지금 말도 잘 안해. 걔네 학교 축제 때 가서 이야기듣는데, K가 거의 울려고 그러더라." 사연을 좀 더 자세히 듣고보니, L에게 연락하는 것도 겁이 났다. 만약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나도 L과는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겠다는 위기감까지 들었다. 한마디로 말해 '맛탱이가 갔다'는 것이었다. K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니나다를까 하소연이었다. 그래도 한쪽이나 중재자 또는 관찰자만의 이야기만 들을 수 없어서 L과도 통화를 했다. "순전히 내가 잘못했지." 다행히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얼마 후 L은 여친이랑 헤어졌는데, 한참동안은 그때 이야기만 나오면 겸연쩍어 했다.  

나 또한 당시 서울에서 골치 아픈 일을 겪었고, 그 와중에 바로 그 친구들에게 타박을 듣기도 했다. 무슨 오디션에서 탈락한 직후에 그애들이랑 채팅을 하다가 내가 빈정상해 "잠수를 타버리겠다"며 대화를 끊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여자애 때문에 내가 잠적 상황을 즉시 풀어버린 걸 그들이 알게 됐다. "씨댕,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래도 L보다는 상태가 낫지 않냐...;;" 그런데 그때 그 '작업'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보다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속만 썩고 있었다. 하루는 학생회실에서 어떤 형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애가 씨발, 그걸 해서 힘이 나고 주변에 보기도 좋아야지, 서로를 갉아먹는 그런 걸 하면 안돼." 다른 사람더러 하는 말이었지만 꼭 나더러 하는 소리 같았다. 그 덕분인지 나는 소모적인 작업에서 생각보다 빨리 벗어날 수가 있었다.

입학했을 적 과반에서 남들이 칭찬하고 높이 사는 한 누나가 있었다. 나보다 두 학번 위고 서너살 위였다. 교양 있고 지적이고 품위 있고 그런, 나무랄 데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 이듬해 초 어느날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온 그날, 그가 수술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흉볼 일이 아니었고, 아무도 흉을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문제는 그 자신이 먼저 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얼마 뒤 02학번 새내기들이 들어왔는데, 그중 삼수를 했던 어떤 애와 그 누나는 사귀게 되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 새내기는 여기저기 껄떡거리다가 그 누나한테 정착했고, 비결을 묻는 다른 사람들에게 "5분간 삽질했더니 넘어오더라"는 말로 과방에 있던 그의 선배들, 특히 내 또래 여학생들의 두껑을 열어버렸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주변의 평은 틀린 걸로 판명났다. 사람이 변했는지 원래 그랬는지를 따지는 건 무망한 짓이고, 어쨌든 그 누나는 우리로부터 멀어져갔다. 나는 물론이고, 그 누나와 오래 교류해왔던 사람들조차 그 누나와 더 말을 섞지 못했다.  

3년전인가, 4년전인가의 일이다. 무슨 세미나가 끝난 다음에 뒤풀이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던, 나를 비롯한 세 사람에게 물었다. "다들 애인이 있으시죠?" 정말 그랬다. "세상에 두려운 게 없는, 참 든든하다는 그런 눈빛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그는 일주일인가 이주일이 지나서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새에 솔로가 되어 있었다. 시시콜콜 그동안 어떻게 되었노라고 털어놓을 수는 없었고, '그럼 눈빛만으로 치면 나는 언제나 연애중이었다는 것인가'하고 씩 웃고 말았다. 연인이라는 존재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를 시달리게 하는 조건이나 일들을 잠시 잊을 수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니네가 뭐라 그러든 나는 편이 있기 때문에 꿋꿋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날이 갈수록 깨닫는 거지만 그건 나의 천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언제나 반면교사, 타산지석에 기대어 왔던 지난날로부터 배운 것이다. 저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배울 만한 점이나 부러운 구석을 일부러 찾고 뒤지는 것도 참 고역스럽다.

그 누나의 소식을 들은지는 한 7년쯤 됐다. 사는 게 대부분 그렇겠지만 여자 쪽이 좀 더 힘들다. 과반 커플의 경우 깨지고 나면, 남자는 다시 친구들을 찾아오고 친구들은 그를 어쨌든 받아주지만 여학생 쪽은 달랐다. 한번 멀어지면 좁히기 힘들다. 남이 받아줘도 제 스스로가 돌아가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결별 후에는 어학연수를 떠나는 여학생들이 많았다. 뭐 남학생이라고 해서 쉬운 것만도 아니다. 군으로 직행하기도 했으니. '한 편'이라는 거, 참 부질 없다. 고작 그래서 달라진 눈빛이라는 거, 상황이 역전되면 장사 없다. 그러고 보면 이와 반대로, 자기네끼리 알콩달콩 살면서도 주변 사람들 보살피고 분위기 훈훈하게 만들어주던 사람들은 갈라지고 나서도 사람 구실하면서 살았다. 지난날의 옛사람들이지만 다들 근황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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