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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세기 소년 1 - 강림>

Film Tent & 2nd Stage | 2008. 9. 18. 21:16 | Posted by 김수민
만화를 오려내서 콘티에 붙였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상영 직전에 나오는 서태지 뮤비는 안 넣는 게 나았겠다. 갖다 붙이기도 적당히 해야지.. 그게 뭐냐.

주인공 중 하나로 출연한 토키와 다카코. '유키지' 역할 치고는 지나치게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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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책이라곤 읽지 않는 | 2008. 9. 16. 19:38 | Posted by 김수민

서점에서 <케인즈&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좋은 교양서적이 나왔겠거니 하고 지나치려다가 손으로 집어들고 말았다. 지은이 때문에.

현재 진주산업대에서 화폐금융을 강의하는 박종현 교수는 7년 전 내가 수강했던 <정치경제학> 수업의 강사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분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내 이름을 먼저 알았고, 수업시간에 내 이야기를 꺼냈다는 소문이 났다. 내가 수업을 들었을 때도, 뻔히 강의실 안에 앉아 있단 걸 알면서도, 내 칭찬을 했다. 왜 그렇게 칭찬을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수정자본주의 대 신자유주의', '시장실패론 대 정부실패론'이라는 교과서적 구도에 입각한 듯한 이 책을 피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몇가지 원인이 있다. 일단, 나는 그의 수업을 들었고, 그의 스타일과 인문학적 소양에 대해서 조금 안다. 몇해 전 한겨레신문에 연재하던 그의 경제칼럼도 재미나게 읽었다. 마지막으로, 안다고 넘겨버린 것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고 싶었다. 사실 난 아직도 경제학에 문외한이다. 하이에크에 대해서는 오래전 <노예의 길>을 읽고 밀턴 프리드먼과는 다른 부류라는 직관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아니, 케인즈에 관해서도 나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 나는 진정으로 '시장'을 통찰했다고 보기 어렵다.  

박 교수는 수업시간에 다양한 사례를 들다가 다른 길로 접어들고마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일화를 꺼내드는 그에게 "이번엔 돌아오셔야 해요"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 습관이 가장 빛났던 때는 마지막 수업이었다. 한국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들이나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같은 이론들이 정연하고도 다채롭게 소개되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강연 끝머리에 그는 자신의 성향과 자신이 속한 어떤 연구모임의 성격을 "케인지안 좌파"라고 밝혔다. 조금 어렴풋한 기억인지라 무슨무슨 일을 할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는 그 강의를 끝으로 국회도서관 연구원 일만 했고, 조금 지나서 진주로 갔다.

책날개에 나오는 "대안적 제도주의 경제학의 분석틀을 우리 사회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데도 관심이 있다"는 저자 소개에 '그러면 그렇지'한다. 조금 더 그의 글을 자주 봤으면 좋겠다. 책 내용은? 지금 막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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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남긴 인물사진, 최고의 포스 두장

Free Speech | 2008. 9. 11. 14:47 | Posted by 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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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 강 무이코 (앰네스티)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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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 (가톨릭 신부) ⓒ오체투지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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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물

Free Speech | 2008. 9. 10. 00:04 | Posted by 김수민
북한에서는 남측 지도자 등 누군가를 비방할 때 "추물", 더 심하게는 "추물 중의 추물"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외에 "저능아"라는 독설도 있었고, 한꺼번에 "김영삼놈", "이회창놈"을 공격하기도 했다.

김정일은 혹시 아무리 9.9절이라지만 추물 중의 추물과 같은날에 행사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꾀병을 부리는 건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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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천,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Free Speech | 2008. 9. 6. 16:08 | Posted by 김수민
방금 <레디앙>에 들어갔다가 최병천씨가 주대환을 옹호한 글을 읽었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0900

그는 주대환의 비판자 셋을 겨냥하고 있는데, 아이고 이런, 이광호, 박노자와 함께 내가 꼽혔다.

 7. 주대환 비판에 대한 反비판 - 박노자와 김수민의 경우

(중략)
 
셋째, 안티조선에 입각한 비판이다.(김수민) 안티조선이 일시적 ‘시민운동’의 차원에서라면 긍정해줄 여지가 있겠지만 정당에서 대표적 우파 신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상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발상이다.

민주주의의 철학적 근본전제는 '다원주의'이다. 다원주의란 내가 틀리고 상대방이 맞을 수도 있다는 진리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상대방 주장을 ‘타도의 대상’이 아닌 ‘경쟁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당연히 상호소통을 통한 진리의 상호침투를 승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극좌파이건 극우파이건 모두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정당이 ‘안티조선’의 차원에서 기고, 인터뷰를 금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PD적 잔재’에 입각한 체제 부정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흐름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긍정성과 민주주의를 강조한 주대환의 글을 <시대정신>에 기고한 것은 오히려 적절한 행위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태어나서 PD계열에 몸담은 적도 없고 그다지 PD적인 주장을 한 바도 없는 내가 졸지에 '체제 부정주의자들'이 된 까닭은, 조선일보와 어울리는 걸 문제 삼은 것이 다원주의에 반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란다.

칡범과 만나면 칡범과 놀고... 이게 무슨 다원주의인가. 칡범에 물려 죽지나 말지..ㅉ

나는 조선일보가 '우파 신문'씩이나 된다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칡범을 죽이자는 말을 한 적은 없다.
분명한 건 그 칡범은 가두어져 길들여지기는커녕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리 바깥에 있지도 않다.

저 글의 한심함은 몇가지 촌평만으로 충분할 만큼의 한심함이 아니기에
정식으로 공개재반론을 펼 수밖에. 근데 <레디앙>에서 내 글 실어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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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민족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

史의 찬미 | 2008. 9. 6. 02:22 | Posted by 김수민
지난 봄 <일제시기정치사상사특강> 수업 중에 썼던 글이다.

 

성의 있는 김원봉 발제문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발제자께서는 의열단의 노선변화를 설명하시면서 20개조 정강 정책을 창당 당시의 '공약 10조'와 견주어 좌경화 되었다고 평가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사상이 담긴 20개조 정강 정책을 행동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공약 10조'와 대조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발제문 내용만으로는 사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유추하기가 어렵습니다.


김원봉에 대해서는 그가 얼마나 사회주의적이고 또 민족주의자인가,가 논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이번 수업시간에도 그랬을 것 같은데요. 여기에 관해 준거틀을 마련하는 데 있어, 강의 초반에도 교수님께서 거론하신 바 있지만 개념정리나 구획기준을 한번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공산주의자가 아니면서 민족해방투쟁을 하는 이들을 민족주의자라고 통칭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좌파인데 단계론적으로 반봉건 부르조아 민주주의혁명 노선과 함께 민족독립을 추구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다만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에 정치적으로 대비한 결과로 '알고 보면 민족주의자(민족적이다)'라는 변명 또는 해명이 나왔던 사정은 있을 것 같지만요. 온건사회주의자와 진보적 민족주의를 구별하지 않으면 남는 건 '공산주의자냐, 민족주의자냐'는 거친 질문 뿐일 것 같습니다.


김원봉의 행적이나 타 정파와의 갈등을 보면 마르크스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대신,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적극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비-공산계열의 온건한) 사회주의자'라는 평가는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의 지인이었다는 황용주 씨는 김원봉이 이런 말을 했었다고 증언합니다. "(...) 무산대중을 해방시키자는 데는 이의가 없다. 다만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봉건적 구질서를 고집할 수 없다. 불평등한 계급사회는 어디까지나 타파되어야 한다." 당면과제는 반봉건 혁명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계급사회 타파를 지향하고 있는 김원봉의 지향이 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건 하나의 예이겠지요.


계급독재를 지향하는 코민테른형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도 서구나 북구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나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계급사회의 폐단을 없애 나가고 소유를 사회화하는 사회주의자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김원봉은 그에 비슷한 것 같아요.


나중에 여운형이 있던 조선인민당에 참여하는 이여성과 조선노동공제회에서 노동운동의 서막을 연 김약수 등이 그의 친구였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셋은 함께 중앙학교를 다녔고 3.1운동 반년 전에 중국 남경으로 유학도 가지 않았습니까. 또 한편으로 중국으로 건너온 안광천과 1930년 전후에 교류한 것도 의미심장한 과정입니다.


물론 그의 노선은 이여성, 김약수 등과도 다른 부분이 있었고 여기서도 두드러지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운형이 신한청년당을 구성하고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로 보냈을 때 김원봉 등은 외국인에게 호소하여 동적적 처분을 기대하는 것을 못 마땅해 했습니다. '외교를 통한 독립노선'을 강하게 부정한 것이 '비-코민테른 사회주의', '민족협동전선'과 함께 그의 특성으로 꼽힐 수 있는 대목이지요. 이여성, 김약수가 3.1운동을 맞아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도 김원봉은 해외에서의 무장투쟁에 중점을 두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쑨원의 권유를 받아들여 기존의 의열단 노선을 접으면서까지 '폭력투쟁'을 '무장항쟁'으로 승화시키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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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Free Speech | 2008. 9. 4. 16:44 | Posted by 김수민
20세기 최악의 정치지도자는
히틀러, 무솔리니,
레닌, 마오,
스탈린, 폴 포트, 브레즈네프, 김일성
프랑코, 피노체트, 이디 아민, 후세인, 빈 라덴 등등이 아닌
레이건과 대처다.
놈들은 여전히 건재하며 활개친다.
우리는 마땅히 독재와 광신에 맞선 20세기의 투쟁에 경이를 표해야 하지만,
20세기에 미처 발라내지 못한 미친 살코기는 21세기에 그대로 붙어 있다.
죽은 개가 된 나치즘과 공산주의 따위에 안심하며 '역사의 종언'을 논하지 말라.
 
세계적으로든 일국적으로든 지난 8년의 세월동안 당신은
1960년대는커녕 1980년대 또는 1990년대에 비길 만한 흐름이라도 느낄 수 있었는가?
20세기는 끝나지 않았고, 세기말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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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ntioneers

Film Tent & 2nd Stage | 2008. 9. 2. 04:10 | Posted by 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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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원 남자와 민주당원 여자의 러브스토리,라는 소개에 입맛을 다시는 이들이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개봉을 하지 않았던 영화고, 아마 DVD를 구하기도 험난할 것 같다. 나는 2005년 부산까지 내려가 해운대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봤다. 물론 그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서 간 것은 아니다. 그 영화는 그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처음 본 영화이다. 나는 다음 영화(아마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였던 것 같다) 입장시간이 임박해서 '감독과의 대화'가 시작되기 전 자리를 떠야 했다. 아일랜드 국적의 모라 스티븐즈 감독의 미들 네임은 '미옥'으로 그의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이 영화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오버랩되며 만들어졌다. 대사에서 민주당원은 좌익으로 공화당원은 우익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주로 부시 정부의 외교정책에 초점이 맞춰진다(이런 영화가 유럽을 배경으로 했다면-이를테면 영국 노동당원 여자와 보수당원 남자가 주인공이었더라면 정치적 주안점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공화당 전당대회는 픽션이 아니다. 규탄하러 나온 시위대는 현실의 시위대였다. 힙합, 레게 등 다양한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물놀이패의 풍경도 잠시 스친다. 그중에는 "부시도, 캐리도 싫다. 우리에게 선택권을 달라"는 플래카드도 섞여 있다. 미국인으로 치면 거기에 가까울 나는 사실 감독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한국 진보정당의 당원인데, 민주당이 영화 내내 '진보'나 '좌익'으로 일컬어지니 서글프다." 다음 영화만 아니었다면(영화제에서는 늦게 도달한 관객에게 커튼을 열어주지 않는 게 관례다) 정말 그렇게 말했을 터이다. 

내가 가장 유심히 봤던 건 양측의 문화양식이었다. 공화당원 남자는 중절모를 쓰고 정장을 빼입으며 동료 당원들과 전당대회를 맞이한다. 민주당원 여자는 동료 운동가들과 모의를 하는데, 이념적인 대화는 거의 없고 퍼포먼스와 소품에 관한 토론이 많았다. 가령 전쟁반대 시위에 쓸 관과 그것을 덮을 성조기를 어떻게 마련하고 어떻게 장식할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때 나는 미대가 없는 소속학교의 특성과 그것이 학내 학생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또다른 긴장을 유발하는 존재는 민주당원 여자의 친구이다. 그는 학생운동가 출신의 수화 통역사인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수화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고 시름에 빠진다. 정치적 신념에 어긋나지만, 장애인들의 편리를 모른체하기 힘들었고, 더구나 생활여건상 일거리를 외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임무를 마친 뒤 재킷을 열어 티셔츠의 반전 표식을 보여주는 기습시위. 그러나 그는 통역만을 마치는데, 부시가 있는 무대 옆에서 열심히 수화를 하는 그의 모습에 거대정치의 구도로 읽어낼 수 없는 인간의 삶이 스쳐간다.(영화 스탭들은 이 장면을 찍느라 곤욕을 치렀다. 장내 씬도 바깥의 규탄시위 장면처럼 실재였고, 스탭들은 촬영 도중 붙잡혀 구류를 살아야 했다.)

이 영화에서 정치는 두 남녀 간에 두드러지는 차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스티븐즈 감독 본인도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감독이 민주당 지지자는 아닐지라도 부시반대인 것 같기는 하다. 잠시 공화당원 남자는 대학 동창인 민주당원 여자에게 이끌려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하면서 착잡함에 사로잡힌다. 영어독해에 취약한 탓에 외신 따위를 읽을 리가 없는 내가 그라운드 제로의 의미가 180도로 뒤집혔음을 깨달은 것이 바로 그 덕택이다. 아니, 외신을 읽는 쪽보다 더 내게 이로웠다. 기사 읽고 사진 한장 보았다면 그냥 알고 끝났을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안다는 것과 깨닫는다는 것은 다르다(이와 동일한 문장이 고종석의 소설에 있음을 밝히는 바지만, 누구나 '안다는 것과 깨닫는다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고 또 깨달아가지 않는가).


2004년 말, 담배를 피다 머리를 싸쥐었었다. "김수민 수경님 진짜 걱정이 되십니까." "그렇지. 나야 몇달 지나면 제대지만, 니네는 큰일이다. 생각해봐. 부시가 되면 데모가 많아지겠냐, 적어지겠냐?" "아, 그렇지 말입니다." 어느새 4년이 흘렀다. 작년 루아얄이 프랑스 첫 여성대통령 탄생을 앞두고 좌절할 때 그러려니 지나쳤던 사람들도 이번엔 오바마의 당선을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게 그렇다.

이제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자의 대선 후보지명 전당대회를 끝냈다. 저 컨벤셔니어즈 가운데서도 또 영화 주인공들이 나올지 모르지. 그나저나 <컨벤셔니어즈>는 어떻게 끝나냐고? 아 참, 참고로 영화에서 민주당원 여자는 약혼자가 있고, 공화당원 남자는 유부남이다. 덧붙이자면, 이 참고사항은 힌트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나의 하릴없는 장난일 수도 있다. 결말은, 비밀이다. 다만 난 당신이 어디선가 이 영화와 마주치게 된다면 놓치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고!(마지막 문장은 개그콘서트 '이색극장'의 안상태 말투로 읽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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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

Free Speech | 2008. 9. 1. 18:00 | Posted by 김수민

당신은 세금을 깎겠다는 놈들이 바로 봉급을 깎는(깎던) 그놈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있나요?

[슬로건 제안] 감세는 감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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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과 레닌

Free Speech | 2008. 8. 30. 15:25 | Posted by 김수민

지젝이 레닌을 말할 때면, 이성욱이 은희경을 비평하면서 구사한 '농담의 위장막'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자유주의 정당이랑 손잡고 대선 나간 사람 치고는 너스레가 좋다.  그 레닌타령도 참 세상 살 만해서 하는 소리 같고. 그렇게 백날 주깨싸도, 레닌이 사람 많이 죽인 새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레닌이 권력을 잡는 데 성공했다는 측면에서 그를 들먹이는 사람도 점차 느는 듯하다.  전술적으로 거론한 건지 예찬하고 배우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중 최악은 "레닌이 덕양갑에 나왔다면?" 어쩌라고? 혁명동지를 죽이거나, 아니면 혁명동지에게 죽고 싶나.  혁명 나봐야 다들 후자가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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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Speech | 2008. 8. 29. 17:20 | Posted by 김수민
김정진, 민주노동당 활동으로부터의 교훈 ③ : 국회의원의 목을 치는 정당이 되야

(전략)

민주노동당 모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었다. 이는 조선일보에 보도되었는데, 이  의원은 사실을 부인하였다. 우연히 해당 의원실의 보좌관의 요청으로 이 일에 관해서 사실 관계를 확인하던 중 필자로서는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일단 확인된 것만으로도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고, 위기감을 느낀 필자는 이를 대표단에게 보고하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의원단과 대표단의 온정주의는 끝도 없었고, 모든 사람은 침묵했다. 보고를 한 필자만 거의 바보가 된 분위기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태도는 ‘덮자’였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그 의원은 착한 사람이며 부동산 투기를 할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고, 자신도 부동산 투기 의심을 받았던 그 집에 가보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일보의 공격이며, 심지어 다른 동료의원들은 자신도 조선일보의 공격을 받았다며 위로해주기까지 하였다.


여기서 더 큰 개그가 시작되었는데, 유일하게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최고위원은 이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할 경우 그 후 순번으로 의원이 되는 사람과 정파적으로 매우 친밀한 사람이었다.    

(후략)


아, 당을 '이용대상'으로 삼았던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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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경향신문>은 '국가정체성을 묻는다'라는 특집의 세번째 기사로 '자유주의'를 다루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8211908045&code=210000). 한국에서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경합하고 있고, 자유주의는 반공주의나 시장주의의 맥락을 따라 굴절되었음을 잘 소개하고 있는 기사다. 이 기사는 그러나 도저히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여러 부류의 지식인들을 자유주의라는 한울타리에 넣어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


자유주의라는 개념은 본디 폭넓은 해석이 가능하고 쓰임새가 헤프지만, 이쪽 저편을 다 자유주의자로 칭하게 되면 자유주의라는 말은 아예 무용해진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라는 말은 사실상 폐기되거나, 또는 매우 엄밀한 의미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경향의 기사처럼 자유주의의 여러 종류를 들어주는, 이를테면 박노자와 복거일을 '두 자유주의자', '다른 자유주의'로 가리킨 것은 또다른 오해를 분만할 공산을 한껏 높여준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8211859305&code=210000). 공통점이 희박한 사람들을 각기 다른 수식을 붙여가면서 굳이 엮어야 했을까.


우선, 복거일이나 공병호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박정희시대에 긍정적이다. 박정희정권이 훨씬 악독한 독재정권인 김일성정권으로부터 자유 대한을 수호했다는 취지에서다. '나쁜 자를 더 나쁜자로부터 지켜는 것이 자유주의자의 임무다'라는 복거일의 지론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이다. 나는 박정희정권보다 김일성정권이 더 독재적이라는 데 대체로 공감한다. 김일성정권으로부터 박정희정권을 지켜줄 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지만 복거일 등은 박정희가 억누른 자유를 박정희로부터 지켜내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중에 얻을 자유를 빌미로 현재의 자유를 유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들이 군사독재를 방어하며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건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정체도 불분명한 '국가(체제)의 자유'로, 개인의 생명보다 민족의 생명이 더 중하다는 황장엽의 사유와 동형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치학자 린츠의 발명 이래 쓰이는 권위주의-전체주의의 분류를 응용하자면, 박정희정권은 권위주의이고 김일성정권은 전체주의다. 독재들의 성격을 분별하는 기초적 잣대로써 린츠의 학설은 유용하다. 그러나 '뉴라이트'가 늘상 되내이듯 권위주의가 그나마 전체주의보다 낫다는 결론으로 치닫는 순간, 그것은 권위주의에 대한 역사적 옹호로 전락한다. 자유주의자로서 써먹을 수 있는 논리가 아니다.


항간에서는 복거일, 공병호가 정부의 경제적 간섭을 존중하는 (칼 포퍼적) 자유주의자(liberalist)는 아닐지라도 (하이에크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라는 점을 인정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개념과 용어의 사치다. 자유지상주의자의 길이 권위주의자나 보수주의자와 다르다면, 정치적으로도 국가의 간섭을 극력 배제해야 하고, 박정희의 정치적 독재를 가차 없이 비난해야 마땅하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박정희를 옹호할 수 없을 것이다. 복거일과 공병호, 뉴라이트 등등은 조갑제 같은 국가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재벌의 능동성에 더 비중을 두는 입장이지만, 재벌이 누린 자율성도 국가가 부여하였으며 독재정권기의 경제성장은 명백히 국가주도형 개발독재에 따라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보적인, 그리고 경제적 측면보다는 사상적, 정치적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진중권, 박노자, 고종석 등은 자유주의자일까? 박노자는 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은 인간의 해방과 진정한 자유의 실천이므로 저도 ‘광의의 자유주의자’입니다. 궁극적으로 자유주의는 사회주의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자유주의자이면서도 사회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근거로 그를 자유주의자라 지명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박노자가 언급한 자유주의는 사회주의자도 중시하는 자유주의이자 사회주의자가 아닌자도 얼마간 또는 전적으로 따라야 할 자유주의이다. 거기 기초해 자유주의자를 가려낸다면 극단주의자와 교조주의자들을 뺀 좌우의 모두가 자유주의자로 지목되어야 할 것이다.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는 한국 자유주의의 명랑한 성취이기는 하나, 저자 자신이 자유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진중권은 자칭 자유주의자들에게 '영업의 자유'만을 떠들지 말라고 일갈하면서,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자유주의를 사회적 '상식'으로 심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왔을 따름이다.


특집 기사에서 자유주의자로 거명된 또다른 인물들, 강준만, 고종석, 최장집의 경우,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자의 면모가 짙기는 하나 이들도 노무현정부 5년동안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와 그로 인한 빈부격차의 심화를 겪으며 좌파 쪽으로, 사회민주주의 쪽으로, 다소 사회주의적으로 기울었다. 고종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자유주의자는 보수주의자에 가깝고, 또다른 자유주의자는 사회민주주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명백히 후자이고, 나아가서는 자유주의자에서 탈피해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어가는 편이다. 그들은 그럼으로써 자연스레 자유주의라는 스펙트럼 자체를 형해화시킨다. 복거일, 공병호 등 역시, 비록 반대편에서지만,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절대권력의 대항마로 등장한 자유주의는 자유의 확산과 함께 독자적인 이념으로서의 생명력이 되레 줄어드는 아이러니한 귀결을 맞이한다. 신체, 사상, 집회, 결사, 언론, 프라이버시 등의 자유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자유'에 관한 논쟁은 경제적인 자유, 그러니까 사유재산권과 생존권을 둘러싼 투쟁에 국한되어가며 치밀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현재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자유주의운동도 사회복지의 요구 및 그것을 가능케하는 사상과 언론의 자유로부터, 사유재산권을 사수하려는 움직임에 지나지 않는다. 뉴라이트의 '뉴'는 그저 '수구'라는 공세에 포위된 조갑제, 김용갑 등과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홍보전략이고, 그들의 자유주의는 경향이 지적한대로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자유와는 거리가 있다. 특집기사는 그러한 사이비 자유주의들이, 자유주의자는 물론 참다운 사회주의자나 진정한 보수주의자까지도 견지해야 할 가치를 버리고 배반하는 현실을 분석하는 방향성을 띠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복거일, 공병호 등이 자유주의자가 아님을 명토박고, 박노자, 진중권 등을 자유주의자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리버럴'한 진보 지식인으로 등장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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